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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큰 사람은 수갑 차고 다녀야 하나"… '뇌피셜' 난무하는 맹견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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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큰 사람은 수갑 차고 다녀야 하나"… '뇌피셜' 난무하는 맹견 지정

입력
2024.05.30 11:00
수정
2024.05.30 11: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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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전문가 4인 긴급 좌담회
"개에 대한 지식을 예능에서 배워"
"품종 낙인 대신 보호자 책임 강화해야"


한 가정에서 사랑 받으며 지내고 있는 핏불 믹스견 '애기'. 애기 보호자 제공

한 가정에서 사랑 받으며 지내고 있는 핏불 믹스견 '애기'. 애기 보호자 제공


정부가 개물림 사고의 예방과 감소를 위해 시행 중인 맹견사육허가제와 기질평가제를 놓고 그 실효성에 의문(본보 5월 16일 자)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은 맹견을 모두 잠재적 위험한 개로 인식하게 하는 낙인 효과만 강화한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대전 동구에서 시민이 구조해 기르던 소형견 3마리가 울타리 밖으로 나왔는데 맹견 70마리가 탈출했다는 재난문자가 잘못 발송되는 사건이 있었다. 또 방송인 이경규의 웹예능 ‘존중냉장고’는 입마개 종이 아닌 진돗개에게 입마개를 씌우지 않는 게 마치 ‘매너’를 지키지 않은 것처럼 그려 진돗개 혐오 논란이 제기되는 등 맹견이나 진돗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혐오를 드러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일보는 전문가 긴급좌담회를 통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 중인 맹견사육허가제와 기질평가제의 문제점과 실제 개물림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다각도로 살폈다. 좌담회에는 박정윤 수의사(올리브동물병원장), 알렉스 트레이너(KPA 코리아 매니저),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최태규 수의사(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가 참석했다.

품종 낙인찍는 맹견부터 재정의해야

한국일보가 17일 서울 용산구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사무실에서 개최한 정부의 맹견사육허가제와 기질평가제 도입 관련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정윤 수의사, 최태규 수의사, 이형주 어웨어 대표, 알렉스 트레이너. 고은경 기자

한국일보가 17일 서울 용산구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사무실에서 개최한 정부의 맹견사육허가제와 기질평가제 도입 관련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정윤 수의사, 최태규 수의사, 이형주 어웨어 대표, 알렉스 트레이너. 고은경 기자

△사회=정부는 맹견으로 5종(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스태퍼드셔 불테리어, 로트와일러)을 지정하고, 이에 대한 관리를 강화했다.

△박정윤=먼저 맹견이라는 단어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관행적으로 맹견을 종으로 나누는데 이미 해외에서 비과학적으로 밝혀졌다. 호칭이 주는 문화적인 폭력성이 큰데 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막연한 두려움과 인상이 맹견으로 지정된 종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정당화한다.

△이형주=맹견을 종으로 지정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은 맹견들도 위험하다고 낙인을 찍는 것이다. 맹견은 품종이 아니라 공격성을 보인 이력이 있는, 공공안전에 위험을 줄 수 있는 개를 말하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어떤 공격성이나 문제 행동을 보이지 않는데 위험한 개로 단정 짓지는 않는다.

△알렉스=미국 보호소에 들어오는 70% 이상은 핏불 믹스견이지만 입마개를 씌워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 즉 맹견으로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또 특정 종 사육을 금지한 주와 그렇지 않은 주의 개물림 사고를 비교해도 차이가 크지 않다. 이는 개를 종이나 외모가 아닌 성향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최태규=맹견이라는 단어 뜻은 사나운 개다. 어떤 특징, 성향이 있는 개들인데 지금은 어떤 특정 품종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게 문제다.

박구원 기자

박구원 기자

△사회=맹견 대신 어떤 용어를 제안하나.

△박정윤=실제 공격을 했다면 위험한 개로 분류하고, 공격을 하지 않았지만 (너무 우려가 된다면)위험이 우려되는 개 정도로 구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형주=맹견이 사나운 개를 뜻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미 5개 종으로 정의가 돼 버린 상황이다. 맹견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지만 용어를 바꾼다면 위험한 개를 제안한다.

△사회=개물림 사고 예방과 감소 대책의 핵심은 기질평가제다. 내용이 속속 공개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은.

△알렉스=공격성을 드러내지 않은 개가 공격을 하면 사고가 크게 날 수 있다는 이유로 제재하는 것은 덩치 큰 사람은 수갑을 차고 다녀야 한다는 논리와 같다. 해외에서는 공격성이 아닌 행동 평가를 한다. 또 동물이 살아온 환경 등이 종합적으로 평가된다. 반면 정부가 내놓은 기질평가 내용을 보면 해외의 치료견 테스트 내용과 매우 유사하다.

△최태규=정부가 도입한 기질평가제도는 공격성을 유발하는 방식이다. 개물림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개들이 맹견이라서가 아니라 사고가 난 원인과 배경이 있는데 이 점이 간과됐다. (실제 개물림 사고를 낸 개들의 종은 다양하다.)

"개 기르는 보호자 책임부터 강화해야"


2020년 초 경기 안성시 개농장에서 구조 당시 머루는 사람을 좋아하고 다른 개친구들과도 잘 지낸다. 배지수씨 제공

2020년 초 경기 안성시 개농장에서 구조 당시 머루는 사람을 좋아하고 다른 개친구들과도 잘 지낸다. 배지수씨 제공

△사회=현행대로 제도가 시행된다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이형주=개식용 종식법 시행으로 앞으로 개농장이 문을 닫게 되면 도사견, 도사믹스견들이 개농장 밖으로 나오게 된다. 내가 알기로는 개농장 속 도사견 중에는 사람을 무서워하고 겁을 낼 뿐 공격성이 많은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현행법대로라면 도사견을 입양하려면 위의 허가는 물론 평가까지 받아야 한다. 유기동물 입양을 권장하면서 정작 허들을 높이는, 현실적인 상황을 새밀하게 살피지 못한 부분이다.

△박정윤=이미 소형견은 입양이 가능하고, 중대형견은 입양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박혀 있다. 이 때문에 이른바 '반려동물' 범주 안에 들어가는 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맹견이라는 분류를 더하면서 여기서 배제되는 동물은 더 늘어나게 됐다. 이런 인식 때문에 진돗개 보호자들이 꽃 장식을 달고 산책을 하는 등의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알렉스=정부의 기질평가가 제대로 개들을 평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심리적으로 어려움이 있어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는데 상담사나 의사가 테스트를 한다며 갑자기 놀라게 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보호소에 들어오는 모든 개에 행동평가를 하는데 이는 더 적합한 가정을 찾아주고, 필요한 부분을 교육하기 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득이하게 안락사를 하는 경우도 국내처럼 시·도지사가 아니라 법원이 결정한다.

△최태규=맹견으로 정한 종이 이용되고 있는 투견은 사람을 물기는커녕 오히려 사람에게 친화적인 경우도 많다. 즉 종으로만 기질평가를 한다면 개물림 사고를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또 기질평가를 시행했을 때 평가를 통과하지 않은 개들은 어떻게 할지 정부가 대책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살고 있는 진돗개 '나리'. 나리 보호자 제공

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살고 있는 진돗개 '나리'. 나리 보호자 제공

△사회=개물림 사고 예방과 감소를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알렉스=개에 대한 지식을 예능에서 배우는 게 문제다. 계속 무는 개를 보여줌으로써 미디어에서 오히려 개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키웠다. 미국에서는 학부모나 교사들이 개물림 사고 예방법이나 개를 다루는 법 등을 배워서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국내에서도 어릴 때부터 개와 함께 사는 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이형=우리나라는 최소한 개를 이렇게 길러야 한다는 것조차 없다. 이 때문에 개를 잘못 길러 공격성을 키운 사람이 또 다른 개를 기르는 것, 또 격리시키는 것도 어렵다. 종을 불문하고 모든 보호자의 사육 관리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게 먼저다. 더불어 꼭 품종을 지정해야겠다면 상업적 판매는 금지시켜야 한다.

△박정윤=이 대표의 의견에 동의한다. 잘못된 기질평가제는 애먼 개만 탓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악용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사람의 책임도 평가 안에 녹여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개를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은 못 키우게 해야 한다.

△최태규=국내에는 개물림 사고에 대한 통계나 자료조차 없다. 무슨 품종이 사고를 내는지도 모르고 소방서에 신고됐거나 사람 응급실 관련 자료가 전부다. 앞서 언급한 대로 품종이 아니라 사고가 나는 맥락을 분석한 뒤에야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진행·정리=고은경 동물복지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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