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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9일, '동물농장' 지하주차장 강아지 '나오미'가 가족 기다린 시간

입력
2024.05.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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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냥 뒷조사 전담팀'

시민들이 안타까워하며 무사 구조를 기원하던 TV 속 사연 깊은 멍냥이들. 구조 과정이 공개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면 어떤 반려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호자와 어떤 만남을 갖게 됐는지, 혹시 아픈 곳은 없는지.. 입양을 가지 못하고 아직 보호소에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새 가족을 만날 기회를 마련해 줄 수는 없을지.. 동물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이라면 당연히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며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궁금한 마음을 품었지만 직접 알아볼 수는 없었던 그 궁금증, 동그람이가 직접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지난 2016년 부산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떠돌던 강아지 '나오미'의 모습. SBS TV동물농장 캡처

지난 2016년 부산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떠돌던 강아지 '나오미'의 모습. SBS TV동물농장 캡처

2929일. 무려 8년. 작은 강아지가 보호소에서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앳된 얼굴과 활발한 활동량만 보면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겠지만, 이 친구는 무려 2008년생으로 추정되는 16세 노견이랍니다.

견생의 절반을 보호소에서 보냈으면 왠지 시무룩하지 않을까, 좌절감을 느꼈을까 싶은 건 사람의 편견이었습니다. ‘멍냥 뒷조사 전담팀’이 만난 오늘의 주인공 ‘나오미’는 그런 것은 아랑곳 않고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지요.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활동가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애교를 부리곤 했었다고 하네요.

아마도 처음 보호소 들어왔을 때부터 10세 가까운 나이가 입양의 걸림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더군다나 낯선 사람은 조금 경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거든요.

지난 2월,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입소 8년만에 입양에 성공한 반려견 '나오미'의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지난 2월,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입소 8년만에 입양에 성공한 반려견 '나오미'의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그러던 지난 2월,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영영 나오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나오미의 가족이 나타난 겁니다.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은 마침내 온센터를 떠나는 날을 앞둔 나오미를 바라보며 지난 2016년을 떠올렸습니다.

떠나지 못한 지하 주차장.. 작은 강아지의 세상 적응기

부산의 한 아파트 지하 3층 주차장. 이 시기에 얼핏 보면 검은 봉지처럼 보이는 물체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물체의 정체는 검은 강아지. 심지어 밥과 물을 챙겨주는 아파트 주민들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지하주차장을 떠도는 강아지의 사연을 보다 못한 주민들은 SBS ‘TV동물농장’에 도움을 요청했고, 동물자유연대와 함께 엄청난 추격전 끝에 결국 강아지 구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구조한 강아지에게 ‘나오미’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보호했습니다.

나오미와 가장 오랫동안 보호소 생활을 한 단짝 '가람이'(오른쪽). 가람이는 먼저 가족을 만나 입양을 갔지만 나오미는 며칠간 슬픔을 느꼈지만, 이내 활발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나오미와 가장 오랫동안 보호소 생활을 한 단짝 '가람이'(오른쪽). 가람이는 먼저 가족을 만나 입양을 갔지만 나오미는 며칠간 슬픔을 느꼈지만, 이내 활발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방송을 통해 알려진 나오미의 사연은 너무나도 기구했습니다. 아파트가 세워지기 전부터 이 동네에 살았던 나오미는 가족들이 이주하면서 홀로 재개발구역에 남았고, 아파트가 세워진 뒤에도 지하주차장에 머물며 가족을 계속 기다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모두들 나오미가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구조대의 도움을 피해 이곳에 머물려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를 그곳에 그대로 둘 수는 없었습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해 줘서 이 강아지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게 활동가들의 마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나오미가 구조된 이후 빠르게 회복하면서 사람들에게 정을 붙이고 있다는 점도 입양을 꼭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굳히게 했다고 합니다.

나오미는 강아지 친구와도 사이가 좋았습니다. 특히 부산 내 다른 동네에서 구조된 룸메이트 ‘가람이’를 각별히 여겼다고 합니다. 당시 부산 내 동물자유연대 보호소에서 가람이와 함께 지내던 나오미는 거의 가람이를 보호하려는 듯한 모습을 여러 번 보였다고 합니다. 가람이와 나오미를 돌보던 한 활동가는 “가람이랑 이불 쟁탈전도 하고 장난기 많고 산책 좋아하고 평소엔 얌전히 방 안에서 쉬면서 친구들과 잘 지냈다”며 “(나오미는) 방도 깨끗이 쓰고 밥도 친구들보다 제일 먼저 먹고 나면 예뻐해 달라고, 쓰다듬어 달라는 애교를 항상 보였다”고 돌아봤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살던 도중 나오미에게도 안타까운 일들은 있었습니다. 바로 룸메이트의 입양이 결정될 때였죠. 가람이도 몇 년 전 입양이 결정되어서 가족을 만나게 됐는데요, 당시 가람이를 입양한 보호자는 가람이 곁에 있는 나오미를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듣기로는 가람이가 떠난 뒤로 나오미가 며칠간 밥을 안 먹었다고 들었어요. 물론 곧 괜찮아졌다고 들었지만, 가람이도 집에 적응해야 해서 인사시켜주지는 못했었어요. 그게 좀 마음이 걸리기도 했었죠. 근데 최근 입양이 되었다고 해서 너무 기뻤어요. 인스타 보니 16세인 나오미는 아직도 건강해 보이던데 너댓살 어린 가람이는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좀 기분이 묘했어요.

나오미를 기억하는 가람이 보호자

그러나 슬픔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오미 담당 활동가는 “같이 지내던 친구가 입양을 갔다고 해서 나오미가 그 빈자리를 느끼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며 “항상 활동가들과 봉사자님들의 사랑을 바라던 사랑둥이였던 기억만 난다”고 설명했습니다.

8년 돌아 만난 새 가족, “이번엔 꼭 추억을 남겨야죠”

그러던 지난 2월, 동물자유연대로 한 통의 문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나오미 입양을 희망합니다.” 처음 전화를 받은 동물자유연대 입양 담당 활동가는 덜컥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바로 직전에 나오미가 오랫동안 보호소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이 SBS ‘TV 동물농장’을 통해 전해진 까닭이었습니다.

방송을 통해 귀여운 나오미의 모습만 보고 나이나 특이사항을 잘 모르고 입양을 하시려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설명을 드리고 나니 나오미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계신 거예요. 나오미의 과거까지 다 알고 계셨던 거였죠.

동물자유연대 입양 담당 활동가

가족을 만난 나오미는 반려견이 되어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홈커밍 데이'를 맞아 보호소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가족을 만난 나오미는 반려견이 되어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홈커밍 데이'를 맞아 보호소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당시 나오미 입양 문의를 했던, 현재 나오미 보호자 정다영 씨는 8년 전 동물농장에 출연했던 나오미의 사연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나오미를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웠던 사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 키우던 강아지를 떠나보낸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너무 힘든 마음에 나오미의 사연은 알고 있었지만 관심을 보내지 못했어요. 그땐 제가 너무 힘들었었거든요.

나오미 입양자 정다영 씨

그러나 8년이 지난 뒤, 다시 마주한 나오미를 보면서 다영 씨는 ‘내 반려견 같다’는 인상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그는 “딱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며 “나오미가 활동가분에게 쓰다듬어 달라고 한 행동이 과거 내 반려견이 했던 행동과 너무나 닮아 보였다”며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마주한 첫날이었지만, 기대했던 활발한 나오미의 모습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처음 마주한 다영 씨를 보고 조금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건 나오미의 첫 만남 때마다 그랬었다는 게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의 설명이었습니다. 실제로 조금 기다려 보니 다영 씨에게 다가와서 쓰다듬어 달라는 예의 애교를 보여줬다고 합니다. 그때 다영 씨는 나오미에 대한 마음을 굳혔다고 합니다.

나오미는 잠시 긴장했지만, 다영 씨 가족에게 이내 마음의 문을 열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나오미는 잠시 긴장했지만, 다영 씨 가족에게 이내 마음의 문을 열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유기견이라서 마음에 상처가 있구나, 경계를 해서 기다려줘야겠구나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생각보다 작다, 활발하진 않네? 하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완전 대반전이에요.

나오미 입양자 정다영 씨

마침내 나오미가 온센터를 떠나는 날, 온센터는 축제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동물자유연대 한 활동가는 “매일같이 함께 생활한 나오미를 더 볼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나오미가 다른 노견들의 희망이 된 것 같아 한없이 기쁘다”며 “나이 많은 노견들도 충분히 사랑스럽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집에 처음 들어온 나오미는 걱정한 것보다 분리불안 없이 잘 적응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다영 씨가 분리불안에 걸릴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죠. 나오미의 적응을 확인한 날은 다영 씨의 어머니가 나오미가 입양된 뒤 처음으로 집에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낯선 사람이 온 것을 확인한 나오미가 딱 한 번 ‘으르렁’ 소리를 낸 뒤 안방으로 들어갔을 때, 다영 씨는 너무나 기뻤다고 합니다. 집을 나오미의 영역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으니까요.

이제 정말 한 가족이 된 다영 씨는 나오미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줄까요?

다영 씨 가족은 나오미에게 다양한 경험을 보여줄 것을 약속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다영 씨 가족은 나오미에게 다양한 경험을 보여줄 것을 약속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제가 첫 강아지를 보냈을 때 가장 후회하는 게, 같이 추억을 많이 못 만들어 준 거예요. 학교 다닌다고, 회사 다닌다고.. 시기를 놓쳐서 미안한 게 많았어요.
그래서 나오미에게는 사계절을 다 보여주고 싶어요. 바다를 보거나, 눈이 많이 쌓인 곳을 가본다거나, 단풍이 예쁘게 든 곳을 본다거나..
그리고 나오미가 입양한 날이 공교롭게도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거든요. 입양 1년이 되는 날에는 꼭 가족사진도 함께 남겨야죠.

나오미 보호자 정다영 씨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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