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지급 지원액 54%를 대출로 지원
'5.8%' 고율 이자 붙여놓고 "지원" 생색
"건물에 불붙이고 소화기 판다" 비판
일본,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의 기후위기 대응을 돕기 위한 지원금에 고율 이자를 붙여 '돈잔치'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기후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제도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22일(현지시간) 유엔 기후기금 데이터 등을 분석해 이같이 보도했다. 로이터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보고된 국가별 지원금 데이터 4만4,539건과, 각 지원금의 세부 조건을 기재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데이터 13만3,568개를 비교 분석했다고 밝혔다.
"상위 4개국, 23조원을 시장 이율로 대출"
기후기금은 2010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16차 UNFCCC 당사국총회(COP16)에서 본격합의 됐다. 선진국이 매년 1,000억 달러 규모 기후기금을 조성해 개도국의 탄소 감축·기후 적응 사업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기후변화는 탄소를 많이 배출하며 경제성장 한 선진국이 만들었는데, 기후재난 피해는 가난한 국가들에 더 가혹하다는 문제의식에서다.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다. 로이터에 따르면, 2015~2020년 유엔에 보고된 기후기금은 총 3,530억 달러(약 480조 원)에 그쳤다. 목표치에 비해 2,470억 달러(약 336조 원)가 미달된 것이다.
게다가 이 지원금 역시 상당 부분 '대가'를 전제로 했다는 것이 로이터 분석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2015~2020년 국가 간 직접 지급된 지원액 1,890억 달러(약 257조 원) 중 약 54%가 대출 형식으로 개도국에 전달됐다. 일본은 지원금 588억 달러 중 약 79%를 대출로 지급했다. 독일(451억 달러·52%), 프랑스(281억 달러·90%) 미국(95억 달러·31%)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국가는 기후기금을 가장 많이 낸 상위 4개국이다.
특히 프랑스는 2017년 에콰도르에 1억1,860만 달러(약 1,616억 원)를 평균 이자 5.88% 수준으로 빌려줬다. 이는 지난해 유럽연합(EU) 등의 국제원조기금 평균 이율인 0.7%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치다. 프랑스 정부는 이 대출로 향후 20년간 7,600만 달러(약 1,036억 원)의 이자수익을 거둘 것으로 계산했다. 로이터는 "상위 4개국에서 최소 172억 달러(약 23조 원)가 시장 평균 이율로 지급됐다"고 전했다.
"개도국, '기후 부채'라는 새 파고 맞아"
저리 대출을 하더라도 불리한 조건을 내걸었다. 일본 정부는 모든 기후 대출 중 32%에 '사업을 일본 기업과 수행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예컨대, 필리핀 전기 철도 사업에 13억 달러를 빌려줬는데, 그중 10억 달러가 일본 기업과의 계약 대금으로 흘러갔다. 로이터는 "OECD는 수혜국이 값싼 계약을 할 기회를 잃어 사업 비용이 최대 30% 치솟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적 있다"면서 "일본은 최소 108억 달러(약 14조 원)의 이익을 거둘 것"이라고 추정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꼼수가 공여국의 기여도를 부풀리고 개도국의 국가 부채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2022년 유엔개발계획에 따르면, 국가 부채가 가장 심각한 개도국 54개국 중 과반이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로 분류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기금마저 대출 형식으로 지급되면 개도국으로서는 선진국에 '이중착취'를 당하는 형국에 놓일 수 있다.
안드레스 모그로 에콰도르 전 국가기후적응국장은 "개도국은 '기후 부채'라는 새로운 파고를 맞고 있다"면서 "(이 같은 선진국의 행태는) 건물에 불을 지른 후 밖에서 소화기를 파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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