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돈 함부로 쓸까봐" 주장
재판 과정서 본인 임의 사용 드러나
80대 부모에게 4남매의 양육을 떠넘긴 것도 모자라 자녀 앞으로 나온 기초생활수급비까지 가로챈 친부에게 법원이 친권 일부를 상실하는 결정을 내렸다.
21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5남매를 둔 A씨는 부인이 지병으로 숨진 뒤 재혼했다. 새 부인이 자녀들을 학대하고 자주 다투자, 성인이 된 맏이만 남기고는 경남 한 시골마을에 사는 자신의 80대 부모에게 보냈다.
소액의 국민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노부부는 손주 4명까지 양육하게 돼 생활비 부담이 컸다. 다행히 4남매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매달 현금 160만 원과 쌀 40㎏를 받게 돼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잠시 뿐이었다. 지난해 8월 4남매 중 첫째인 고교생 B양 은행계좌로 지급돼 온 기초수급비가 중단됐다. 알고 보니, 친부인 A씨가 친권자이자 법정대리인인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B양의 계좌를 폐쇄하고는 자신 명의로 개설해 빼돌린 상태였다.
연유를 파악한 노부부는 주위 도움을 받아 행정기관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아들 계좌로 들어가는 손주의 기초수급비 지급을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법률구조공단을 방문해 법적 조치를 의뢰했다.
법률구조공단은 A씨의 친권행사를 제한해야 한다고 보고 법원에 친권상실과 함께 4남매의 고모를 아이들의 후견인으로 선임해달라고 청구했다. 고령인 조부모보다는 젊은 고모가 잘 돌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법정에 선 A씨는 “부모님이 아이의 기초수급비 160만 원을 함부로 쓸까 걱정돼 돈을 빼내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히려 A씨가 자녀의 수급비를 임의로 사용한 사실이 확인됐다.
재판을 맡은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조영민 판사는 지난달 24일 노부부의 청구대로 A씨의 친권 중 법률행위 대리권과 재산관리권의 상실을 선고하고, 미성년 4남매의 고모를 후견인으로 선임 결정했다. 조영민 판사는 “여러 기록과 심문 전체를 종합할 때 A씨는 자녀의 재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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