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칭더, 16대 대만 총통 공식 취임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현상 유지"
중국, "독립은 죽음의 길"...잔뜩 으름장
여소야대 속 경제 정책 추동력 확보 미지수
'완고한 독립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아온 대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총통이 20일 16대 대만 총통에 공식 취임했다. 그는 이날 취임식에서 양안(중국과 대만)관계의 '현상 유지'와 '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취임 초반 일단 자세를 낮추고 중국과의 마찰 최소화를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중국은 라이 신임 총통 취임에 맞춰 대만에 무기를 공급한 미국 기업 제재를 단행하는 등 '라이 길들이기'에 나섰다.
"대화로 대결 대체"...양안 마찰 최소화 기조
라이 총통은 이날 취임사에서 "민주주의, 평화, 번영은 대만의 국가 로드맵"이라며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라고 밝혔다. 영국 가디언은 이날 라이 총통이 31차례 '민주주의'를 언급했다며 중국과 대만의 '차이'를 강조한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그는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독립' 표현은 자제하고 '현상 유지'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새 정부는 '4가지 견지'를 계승하며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현상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임 차이잉원 정부의 양안관계 원칙인 4가지 견지는 △자유·민주의 헌정 체제 △대만과 중국 상호 불예속 △주권 침범·병탄 불허 △대만 미래의 영원한 견지 등이다. 또한 "주권이 있어야 비로소 국가"라면서 "중화민국(대만) 국적자는 중화민국 국민이며,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서로 예속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동시에 중국과의 대화 의지도 내비쳤다. 그는 "대만을 합병하려는 중국의 위협은 단순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면서도 "대만의 합법적 정부와의 대등·존중 원칙하에서 대화로 대결을 대체하고 교류로 포위를 대체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양측 간 여행 재개와 중국 학생의 대만 취학 문제부터 시작해 함께 평화·번영을 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취임식에는 대만과 수교를 유지 중인 12개국 중 8개 나라를 포함한 51개국에서 500여 명의 외빈이 참석했다. 민진당을 지원하는 미국에선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과 브라이언 디스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일본도 반(反)중국 연대감을 보이듯 현역 여야 의원 37명으로 이뤄진 사상 최대 규모의 대표단이 왔다. 한국은 관례에 따라 본국 차원의 대표단 대신 이은호 주타이베이 대표부 대표 등이 참석했다.
향후 4년간 대만을 이끌어갈 라이 총통은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만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대만대 의대와 미국 하버드대 공공보건학 석사를 거쳐 의사로 일하다, 입법위원 4선 뒤 타이난시장을 역임하며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정치인 라이칭더가 대만인들에게 각인된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과거 어떤 정치인보다 강력한 대(對)중국 강경파였다는 점이다. 타이난시장 재직 당시 "대만 독립은 대만인의 자결권을 위한 것"이라거나 "(1989년의 6·4 톈안먼 사태는) 애국 운동"이라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에 반해 이날 취임사에선 독립이란 표현은 등장하지 않았다. 정권 초반부터 중국과 대립각을 세워 대만해협 위기를 자초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11월 미국 대선까지 대만해협 긴장 고조를 원치 않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의중까지 고려한 결과로도 분석된다.
안으론 '여소야대' 혼란, 밖에선 중국 "죽음의 길" 으름장
반면 중국은 라이 당선자의 '독립주의자 본색'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라이 당선자가 '주권' 등을 언급한 것과 관련, "대만 독립은 죽음의 길"이라며 "어떤 간판, 어떤 기치를 걸든 대만 독립 분열을 추진하는 것은 모두 실패하게 돼 있다"고 밝혔다. '독립'이란 표현을 배제했지만, 주권 언급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 상무부는 이날 대만에 무기를 팔았다는 이유로 미국 방산기업인 보잉 방산우주보안과 제너럴아토믹스 항공시스템 등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으로 새로 지정했다. 지정된 기업들은 앞으로 중국과 관련된 수출입을 할 수 없으며 중국에서 신규 투자도 할 수 없게 된다.
중국군은 취임식을 나흘 앞둔 지난 17일 중국의 3번째 항공모함인 푸젠함의 첫 시험 항해를 공개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려면 최소 3척의 항공모함이 필요하다고 지적해 왔다. 라이 총통 취임에 맞춰 '무력 통일 시나리오'의 최소 요건을 갖췄다고 으름장을 놓은 셈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중국은 차이 전 총통보다 라이 총통을 더 싫어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 왔다"며 "당분간 라이 총통의 힘을 빼기 위해 대만에 대한 군사·경제적 압박을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라이 총통이 처한 국내 정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대만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4%로, 14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민진당이 '고물가, 저임금' 시대를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대만 내 비판도 커지고 있다.
실제 총통선거와 함께 실시된 입법위원(한국 국회의원 격) 선거에서 민진당은 113석 중 51석을 얻으며 과반 달성에 실패했다. 지난달 6곳에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도 5곳을 제1야당 국민당에 내주며 '여소야대' 현상은 심화했다. 지난 17일엔 정부 견제 기능 강화를 골자로 한 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 입법위원이 난투극을 벌이는 등 정국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민진당이 내놓을 경제 정책이 힘을 얻기 어려운 형국이다. 라이 총통은 취임사에서 "절대다수가 없다는 것은 여야가 생각을 공유하고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라며 협치를 호소했다.
후임 라이에게 총통직을 물려준 차이 전 총통은 이날 8년 만에 퇴임했다. 미국 CNN방송은 "재임 기간 그는 미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며 대만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 동시에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기 더 강해진 중국의 침공 위협을 남겨두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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