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만 한 아우는 없었지만 불굴의 정신은 결코 뒤지지 않았다. 다리 근육에 미세 손상이 있는 상태에서 감기까지 걸려 컨디션이 말이 아닌데도 1초도 쉬지 않고 코트를 누볐다. 26년 전 성치 않은 몸으로 눈부신 투혼을 발휘했던 아버지처럼 아들도 있는 힘을 모두 짜냈다.
‘형제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은 지난 5일 형 허웅(부산 KCC)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허웅은 팀 우승을 이끌며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 영예도 안았다. '농구 대통령'이었던 아버지 허재가 1997~98시즌에 받았던 상을 허웅이 대를 이어 수상했다.
동생 허훈(수원 KT)은 비록 준우승으로 마쳤지만 형보다 더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2차전부터 마지막 5차전까지 계속 40분 풀타임을 뛰었고, 챔프전 5경기 평균 26.6점 6어시스트를 찍었다. 감기 몸살로 고생하는 와중에도 26년 전 아버지의 활약을 떠올리게 할 만큼 원맨쇼를 펼쳤다. 그 결과, 허훈은 기자단 MVP 투표에서 21표나 받았다. 1위 허웅과는 10표 차다. 준우승 팀에서 이례적으로 많은 표가 나온 것.
19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한 이래 준우승팀에서 플레이오프 MVP를 받은 건 허재가 유일하다. 1997~98시즌 당시 허재(부산 기아)는 대전 현대와 챔프전에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3승4패 준우승을 차지했다. 7경기 평균 39분33초를 뛰며 23.0점 6.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당시 허재는 오른 손등을 다쳐 붕대를 감고, 경기 중 충돌로 눈 주위에 피가 흘러 반창고를 붙이고 뛰는 투혼을 불살랐다. 허재의 당시 경기 장면은 지금도 올드 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동생과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형은 동생이 얼마나 힘든 상태에서 뛰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허웅은 “동생하고 링거를 같이 맞았다”며 “기침을 많이 해서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더라. 많이 아파해서 안쓰러웠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경기장에 오면 내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동생의 모습에 나도 감동했다”며 “농구에 대한 진심을 보며 나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프로 데뷔 후 처음 챔프전 무대를 경험한 허훈은 이제 다음 시즌 대권에 재도전한다. 이번 시즌은 군 복무를 마친 뒤 시즌 중간에 합류해 동료들과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지만 2024~25시즌은 보다 더 완벽하게 준비하고 몸 상태도 끌어올릴 수 있다. 또 시즌 후 얻게 되는 자유계약선수(FA) 자격도 좋은 동기부여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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