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세계화 심포지엄 '난로 인사이트'...
참석한 외식업계 오피니언 리더들의 조언
스페인 미쉐린 3스타 디스프루타르 셰프
"요리는 문화 세계 전파의 훌륭한 매개체"
"민희진 어도어 대표 인터뷰를 보니, 뉴진스는 K팝을 바꾸기보다 그저 새롭고 재미있는 시도를 하려는 거라고 합니다. 한식 세계화에도 바로 그 태도가 필요합니다. 한식을 어떻게 새롭고 재미있게 재정의할 수 있을까요."
한식 세계화를 논의하는 심포지엄에 아이돌그룹 뉴진스가 주제로 등장했다. 지난달 29, 30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난로 인사이트-미식의 미래, 한식을 말하다'에서다. 연사는 대중음악평론가이자 콘텐츠 산업 분석가인 차우진 TMI.FM 대표, 연설 제목은 '뉴진스로부터 배우는 한식 비즈니스'였다.
'난로 인사이트'는 최정윤(46) 샘표 우리맛연구중심 헤드셰프가 이사장인 '난로학원'의 첫 대중 행사다. 최 이사장은 조선시대 실학자들이 즐겼다는 고기구이 풍습 '난로회'에 착안해 2022년 동명의 한식 글로벌 브랜딩 모임을 만들었고, 지난해 법인화한 데 이어 올해 심포지엄을 열었다. 외식업과 브랜딩의 혜안이 있는 연사들이 참석했다. 지난해 세계적 권위의 미식 시상식인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1·2위에 오른 페루 리마의 센트럴(Central),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디스프루타르(disfrutar) 관계자와 문화·정보통신(IT)업계 인사들까지 모였다. 핵심 인사들을 따로 만나 한식 세계화의 열쇠를 물어봤다.
①"외식업은 고부가 가치 기술 산업"
세계 미식 문화는 2000년대 들어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주도권이 넘어갔다. 과학적 원리를 요리에 접목한 '분자 요리'를 선보이며 14년 동안 미쉐린(미슐랭) 3스타를 받은 스페인 식당 '엘 불리'가 그 흐름을 이끌었다. 지난달 29일 난로 인사이트의 연단에 선 오리올 카스트로(50)는 엘 불리의 유전자(DNA)를 장착한 요리사다. 그를 비롯한 엘 불리의 수셰프(Sous Chef·부주방장) 3명은 2014년 바르셀로나에 '디스프루타르'를 열었다. 지난해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2위, 미쉐린 3스타에 선정된 식당이다. 창의성이 콘셉트로, 1년 치 예약이 꽉 차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카스트로는 "창의성은 오랜 진화를 거쳐 나온다"며 "한국은 역사와 요리의 전통이 깊다는 점에서 스페인과 비슷해 미식 문화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을 처음 방문해 다양한 음식을 맛본 그는 "한국은 유럽에서 각광받는 발효 기술을 비롯해 채소를 나물 반찬으로 활용하는 등 세계로 널리 알릴 식재료와 조리 기법이 많다"며 "특히 한국의 장은 요리에 대한 나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 놓은 개념"이라고 극찬했다.
카스트로의 창의력의 토대는 기술 투자다. 식재료의 새로운 맛과 질감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한다. 지난 10년간 창조한 요리만 800여 개. 그는 "모든 요리에는 개발 당시의 역사와 감정이 들어 있다"며 "디스프루타르에서의 식사는 영혼을 채우는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적으로 종사자가 많은 외식업이야말로 IT산업 못지않은 고부가 가치 기술 산업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렇게 개발한 기술을 전 세계와 공유한다. 분자 요리가 세계 각지로 퍼지면서 스페인 미식이 주목받았듯 요리와 조리 기법 공유가 그 나라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매개체가 된다는 생각에서다.
스페인이 미식 강국으로 부상한 것도, 디스프루타르가 명성을 얻은 것도 전통과 현대의 공생을 이해한 덕분이다. "오래전부터 존재한 것들이 식재료로 재조명되거나 먹는 방법이 창의적으로 개발되기도 하죠. 또 지금의 혁신은 100년 후에는 전통이 됩니다. 요리사는 자신이 하는 일이 스스로를 놀라게 할 정도로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②"주변에 묻지 말고 나만의 길 만들어야"
"지금 뉴욕은 한식에 열광하죠. 어머니가 한식당을 운영하시던 1998년에는 한국 음식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했어야 했는데 요즘은 한식당을 한다고 하면 '한국 음식을 정말 좋아한다'는 반응이 쏟아집니다."
미국 뉴욕에서 한식 스테이크 하우스 '꽃(COTE)'을 운영하는 사이먼 킴(한국명 김시준·42) 그라시아스 호스피탈리티 매니지먼트 대표가 전한 한식 열풍의 현주소다. 그는 "지금까지는 어쩌다 보니 한식이 급부상했지만 제대로 된 콘텐츠와 방향성이 없으면 호감도가 더 높아지기는 어렵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13세 때 뉴욕으로 이민을 간 김 대표는 뉴욕의 유명 요리사 장조지의 식당 등에서 경력을 쌓은 뒤 2013년 이탈리안 레스토랑 '피어라(Piora)'로 외식 사업을 시작했다. 꽃은 2017년 개업 4개월 만에 미쉐린 1스타를 받았다. 2021년에는 마이애미에 꽃을 열어 사업 첫해에 미쉐린 1스타를 받았고, 올해 1월 싱가포르에도 진출했다. 뉴욕에 프라이드치킨 전문 식당 '꼬꼬닭(Coqodaq)'도 추가로 열었다. 4개의 식당으로 올해 매출 1,000억 원을 기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10년간 한식의 위상 변화는 그 이전 모든 시간을 합친 것보다 크다"며 "최근 뉴욕 한식당의 흐름은 바비큐 일색이었던 것과 달리 다양성을 띠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 뉴욕에선 모든 사람이 한 가지 길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며 "다만 그 안에 진정성을 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 가치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며 "한국인은 자꾸 주변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데 비전을 내 안에서 찾지 않으면 처음 설정한 방향성을 지키기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꽃의 성공에 대해서는 "전형적인 한국식 바비큐 식당이 아닌 게 주효했다"며 "한국식 바비큐의 맛은 살리되 서비스는 고급화한 '한국식 스테이크 하우스'라는 정체성으로 비즈니스 식사 고객을 공략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③다양한 산업과의 연결에 답이 있다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다시 북유럽을 거쳐 페루로 이동했던 미식 산업의 주도권이 이제 한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한식 세계화의 골든 타임입니다."
최정윤 난로학원 이사장은 난로 인사이트 심포지엄을 연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최 이사장은 스페인 요리과학연구소 알리시아에서 경력을 쌓았고,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의 한국·중국 담당 부의장이다. 그는 "K팝, K드라마로 대표되는 한국 소프트파워의 마지막 남은 단추가 음식"이라며 "가만히 둬도 향후 5년은 K푸드 열기가 이어지겠지만 일시적 트렌드가 아닌 50년, 100년간 지속되는 문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한식 열풍을 해외 팬덤이 먼저 생성된 방탄소년단(BTS)에 비유하면서 "한식의 장점과 매력을 한국인이 오히려 잘 모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식계 시상식에 참석하면 한국의 존재조차 몰랐던 유명 요리사들이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말을 먼저 건네 오는 일이 많다"며 "지난해 뉴욕에서 선정된 71개 미쉐린 식당 중엔 11곳이 한식당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뉴욕타임스는 한식이 수십 년간 이어진 프랑스 요리 시대를 종식시켰다는 특집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최 이사장은 "한식의 가치와 규모를 키우는 과정"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가치는 '연결'이다. 그는 "한식과 다양한 산업을 연결하는 과정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난로회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다방면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초대한 것도 그래서다. 2년간 300여 명의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난로회에 모여 한식을 고민했다.
"한식을 향한 제 꿈은 큽니다. 한식은 너무너무 잘될 것 같아요. 이번 난로 인사이트를 통해 이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게 시작점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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