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산지 모국' 호주 정부의 요청 수용 가능성 시사
미 기밀 폭로→에콰도르 대사관 망명→영국 수감
"대선 앞두고 '언론 자유 탄압' 이미지 우려한 듯"
정부·기업의 비윤리적 행태를 담은 기밀 문서를 폭로하는 웹사이트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53)가 12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이 생겼다. 미국에서 군사기밀 유출 혐의를 받자 정치적 망명에 나섰고, 현재 영국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어산지에 대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기소 철회’를 고려 중이라고 밝힌 것이다. 미국 법정에서 중형을 선고받는 대신 고국인 호주로 돌아가 석방될 수도 있게 된 셈이다.
10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일본 정상회담 환영식 후, ‘어산지 기소를 중지해 달라’는 호주 정부 요청과 관련한 질문에 “그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앞서 호주 정부는 미국 정부에 수년간 이 같은 요청을 해 왔고, 지난 2월 호주 의회도 어산지의 본국 송환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승인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언급은 의외로 여겨진다. 어산지는 2010, 2011년 미 육군 정보분석가 첼시 매닝(37) 일병이 빼낸 미군 기밀 문서 수십만 건을 위키리크스에 게시했다. 여기에는 △이라크전·아프가니스탄전 당시 미군의 전쟁범죄 △관타나모수용소 내 인권 침해 등 미국의 부도덕한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후 매닝 일병은 징역 35년형이 선고됐고, 어산지는 2012년 영국 런던 주재 에콰도르대사관으로 도피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어산지가 눈엣가시였던 셈이다.
일각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11월 대선 전략 일환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쟁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 행보’라는 것이다. 어산지의 폭로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수정헌법 1조(언론의 자유 보장)를 들어 그에 대한 기소를 보류했다. 매닝 일병도 2017년 징역 7년형 감형과 함께 석방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어산지를 해킹 혐의(2018년), 방첩법 위반 17건(2019년)으로 잇따라 기소하며 최대 175년의 징역형 선고를 가능하게 했다. 가디언은 “바이든이 기소 철회를 결정하면 오바마 행정부와 (입장이) 일치하게 된다”며 “선거의 해에 ‘언론 자유 탄압’ 이미지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했을 수 있다”고 짚었다.
주영국 에콰도르대사관에서 7년간 망명 생활을 하던 어산지는 2019년 4월 망명 허가 취소로 인해 영국 경찰에 체포됐다. 미국은 그의 범죄인 인도를 요구해 왔으나, 지난달 영국 고등법원은 “미국이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고, 사형은 집행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밝히지 않는 한 어산지를 보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어산지는 ‘언론 자유의 투사’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취재원 신분을 마구 노출한다’는 등 부정적 평가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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