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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팰리스 비누 6,000원"... 일회용품 규제, 호텔 배만 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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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팰리스 비누 6,000원"... 일회용품 규제, 호텔 배만 불리나

입력
2024.03.17 07:00
수정
2024.03.17 15:39
0 0

일회용품 과태료 부과 '자원재활용법' 시행
샴푸 등 고급 호텔 어메니티 중고거래 붐
투숙객 일회용품 구매 등 '풍선 효과' 우려
숙박비 할인·친환경 제품 등 업계 노력 필요

15일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호텔 어메니티를 판매하는 글이 다수 공유되고 있다. 당근마켓 캡처

15일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호텔 어메니티를 판매하는 글이 다수 공유되고 있다. 당근마켓 캡처

정부가 이달 말부터 객실 50개가 넘는 호텔 등 숙박업소 무료 일회용품 제공을 금지하면서 투숙객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환경 보호를 위한 법 강화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호텔업계가 기존에 무료로 제공한 어메니티(일회용 비품)를 유료로 전환해 수익 추구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기념품 된 특급호텔 어메니티

최근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국내 대형 호텔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어메니티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샴푸, 컨디셔너, 보디워시 등 목욕용품부터 비누와 슬리퍼까지 물품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5성급인 조선 팰리스 강남 호텔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40㎖ 샴푸 등은 당근마켓에서 개당 6,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해당 판매자는 "이제 대용량 다회용기로 어메니티가 변경되면서 더 이상 구할 수 없다"며 구매를 독려했다.

신라호텔 어메니티인 30㎖짜리 샴푸와 보디워시, 보디로션 등을 1만 원에 판매한다는 글도 올라왔다. 지난 1월 중고시장에는 조선 팰리스, 콘래드 호텔 등 서울 시내 주요 호텔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슬리퍼 14개를 2만 원에 판매한다는 글도 게재됐다.

특급 호텔 어메니티가 중고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이유는 오는 29일부터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해당 법에 따르면 객실 50개 이상 숙박업소는 일회용품을 무상으로 제공할 수 없다. 규제 품목은 칫솔·치약·샴푸·린스·면도기 등 5종으로 위반 시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법 시행을 앞두고 호텔업계는 기존에 무상으로 제공한 일회용품을 유료로 전환했다. 파르나스호텔은 29일부터 생분해 플라스틱 재질 칫솔을 3,500원에 판매할 계획이다. 한화호텔도 기존에 무료로 제공한 칫솔과 치약을 각각 3,300원으로 유상 판매한다. 김진우 대한숙박업중앙회 사무총장은 "법 개정으로 일회용 칫솔 등을 무료로 제공할 수 없다"며 "대신 고객들이 유료로 구입한 뒤 집으로 가져가 쓸 수 있도록 제품 질을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회용품 사용 규제로 인해 호텔용 어메니티 자판기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호텔누리 홈페이지 캡처

일회용품 사용 규제로 인해 호텔용 어메니티 자판기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호텔누리 홈페이지 캡처

어메니티 자판기도 등장했다. 판매 품목도 칫솔부터 샤워타월, 비누, 구강 청결제, 폼클렌징 등 다양하다. 전국 호텔 및 리조트 200여 곳에 어메니티 자판기를 납품하는 허진영 대산종합유통 이사는 "지난해 말부터 규제 대상에 해당하는 숙박업소의 자판기 설치 문의가 늘고 있다"며 "호텔 측은 기존에 구매했던 객실 비품 비용을 절감하면서 일회용품 판매에 따른 수익도 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서 일회용품 구매 소비자 부담 가중

호텔 및 리조트 기업 아난티는 플라스틱 용기가 필요 없는 고체 타입의 욕실 어메니티인 '캐비네 드 쁘아쏭'을 자체 개발해 제공한다. 아난티 제공

호텔 및 리조트 기업 아난티는 플라스틱 용기가 필요 없는 고체 타입의 욕실 어메니티인 '캐비네 드 쁘아쏭'을 자체 개발해 제공한다. 아난티 제공

소비자들은 이 같은 변화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지난달 전남 목포의 한 호텔에 방문한 A씨는 "기본적으로 호텔에서 제공하는 위생용품이 전혀 없어 편의점에서 직접 구매했다"며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회용품을 별도로 구매해야 하는 불편함이 크다"고 토로했다. 최근 서울 시내 한 대형 호텔에 투숙한 김모(40)씨는 "객실 내 대용량 용기가 비치돼 있지만 위생 등을 고려해 일회용품을 별도로 구매했다"며 "호텔들이 환경 보호를 구실 삼아 자체 용품을 개발해 투숙객에게 부담을 떠 넘기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일회용품 규제에 따른 '풍선 효과'를 경계했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호텔 내 일회용품 처리가 줄어드는 대신 편의점에서 일회용품을 구매해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나면 당초 환경 보호 취지가 무색해질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전후 준비 없이 규제를 시행하면 이로 인한 불편은 국민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법 개정 취지와 무관하게 업계와 소비자 간 싸움으로 비칠 수 있다"고 했다.

호텔 일회용품 규제 효과를 위해 숙박료 인하, 친환경 제품 개발 등 업계 자체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처럼 호텔에서 다회용품을 사용하면 숙박비를 할인해 주거나 호텔들이 자발적으로 대나무 칫솔, 고체형 샴푸 바 등 친환경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영애 교수는 "기후 위기 등 환경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에 친환경을 내세우는 호텔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 높아질 수 있다"며 "호텔들이 수익 추구가 아닌 고객 편의와 환경 보호를 절충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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