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폭행, 성희롱 등 잡음 계속
수뇌부, '음주 자제'에 초점 맞췄지만
현장서는 "직무-개인 분리가 주원인"
멘토제 등 통해 사기·소명감 고취해야
각종 추문에 연루된 경찰관들의 비위가 심상치 않다. 14만 거대 조직 특성상 한두 개인의 일탈이 없을 순 없다. 하지만 최근 행태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는다. 음주운전은 예삿일이 됐고 폭행, 성희롱 등 치안을 책임지는 조직이 맞나 싶을 정도다. 수뇌부의 공개 사과와 엄단 경고도 소용없다.
일선 경찰관들은 ‘경찰=사명감’이란 등식이 성립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입을 모은다. 경찰 내부에도 조직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개인주의가 확산하다 보니 직업윤리가 희미해졌고, 자기 통제도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강한 처벌도 좋지만, 바닥으로 떨어진 사기를 회복해 경찰로서의 소명의식을 확립하는 데 대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옅어진 직업윤리, '퇴근 후' 일탈로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을 볼 면목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서울청 감찰 인력을 일선서에 파견해 직원 관리 실태를 조사하고, 결과에 따라 서장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앞서 ‘과한 음주를 금지한다’ ‘N차 음주 근절’ 등의 내용이 담긴 음주 방지 특별지시문도 일선서에 내려보냈다.
수뇌부의 강경 대응은 최근 한 달 새 소속 경찰관의 잇단 비위에서 비롯됐다. 6일에는 강동서 지구대 소속 30대 여경이 만취 상태로 경찰관을 폭행하다 체포됐고, 용산서에선 전직 강력팀장이 음주운전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9일엔 기동단 경찰관이 술에 취해 시비가 붙은 행인을 폭행한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모두 술이 이유인 만큼 음주 근절에 힘을 쏟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현장에선 비위 원인을 달리 보는 경찰관이 적지 않다. 지난달 기동단 경찰관은 미성년자 와 성관계한 혐의로 입건됐고, 성매매 단속에 적발된 40대 경사도 있었다. 비위 행태가 음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들은 일탈이 급증한 배경에 달라진 경찰 조직문화가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한 지구대 팀장은 “이제는 세대를 가리지 않고 근무가 끝난 후의 삶엔 관여하지 말자는, 이른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여느 직장인처럼 근무 외 시간을 보내려 하다 보니 신분을 망각할 때가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실제 최근 일탈 행위는 거의 퇴근 후에 일어났다.
사정이 이러니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본분을 지키려는 경찰관이 외려 눈총을 받기도 한다. 한 지구대 소속 경찰관은 “쉬는 날 주거지 근처 관할에서 사고가 발생해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동료들로부터) ‘과하다’는 핀잔만 들었다”고 했다. 투철한 사명감을 튀는 행동으로 보는 탓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
'금주령'은 대안일까, 미봉책일까
지휘부의 음주 자제령은 기강 확립에 효과가 있을까. 의견은 분분하다. 한 서울 일선서 과장은 “회식 자체가 줄었다 해도 여전히 술 문제 일으키는 경찰은 존재한다”며 “일탈 여지 자체를 없애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술 사고부터 막고 보자는 미봉책 정도론 흔들리는 경찰의 정체성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비판 의견도 있다. 특히 나이가 적을수록 조직에 대한 소속감이 옅고 윗선과 거리를 두기 마련이라 경찰 내부 사기부터 진작하면 기강은 저절로 따라올 수 있다는 것이다. 30년 경력의 경찰 관계자는 “전담 멘토제 등을 만들어 경찰로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초임에 확실히 각인시키고, 직업의식 고양에 많은 교육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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