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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류 미래를 바꿀... 머스크 vs 올트먼 '세기의 소송'

입력
2024.03.12 04:30
수정
2024.03.12 07:5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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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밸리 이야기]
<13>머스크와 올트먼의 소송전
오픈AI 공동 설립 5년 만 갈라선 두 사람
머스크 "오픈AI, 사명 반해 영리 행위" 고소
올트먼 "테슬라랑 합병하자 해놓고..." 반박

편집자주

내로라하는 기술 대기업이 태동한 '혁신의 상징' 실리콘밸리.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지만 거주민 중 흑인 비율은 2%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화려한 이름에 가려진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얼굴을 '찐밸리 이야기'에서 만나 보세요.

샘 올트먼(왼쪽 사진) 오픈AI 최고경영자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AFP 연합뉴스

샘 올트먼(왼쪽 사진) 오픈AI 최고경영자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AFP 연합뉴스


2016년 9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인터뷰했다. 당시 올트먼은 실리콘밸리 최대 스타트업 육성업체인 Y콤비네이터의 대표 자격으로 머스크를 만났다.

때는 두 사람이 그렉 브록먼 오픈AI 전 의장 등과 의기투합해 오픈AI를 설립한 지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다. '성공한 창업가'로서 후배 창업가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머스크의 철학을 탐구하는 것이 인터뷰의 목적이었으나, 화제는 머스크가 "일과 시간의 절반을 쓰고 있다"던 오픈AI와 인공지능(AI)에 집중됐다.

머스크는 인터뷰에서 'AI 기술의 민주화'를 목표로 오픈AI를 설립했음을 수차례 강조한다. "AI 기술의 민주화는 특정 회사나 소수의 개인이 첨단 AI 기술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내 생각에 그것(소수에 의한 통제)은 매우 위험한 일이에요. 사악한 독재자나 국가가 정보기관을 보내서 그것(첨단 AI)을 훔치고 통제권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AI의 민주화를 통해 이를 널리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올트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뷰 중 올트먼은 '머스크가 스페이스X 견학을 시켜준 적이 있는데 모든 세부사항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서 놀랐다'는 일화를 소개하는가 하면, 어떻게 그렇게 '미친 아이디어'에 확신을 갖고 몰두할 수 있는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묻기도 한다.

2016년 9월 당시 Y콤비네이터 대표를 맡고 있던 샘 올트먼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인터뷰하고 있다. Y콤비네이터 영상 캡처

2016년 9월 당시 Y콤비네이터 대표를 맡고 있던 샘 올트먼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인터뷰하고 있다. Y콤비네이터 영상 캡처


그러나 이처럼 꿀이 뚝뚝 떨어지는 듯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안 좋게 끝났다. 2020년 오픈AI와의 연결고리를 모두 끊어낸 머스크는 이후 오픈AI와 올트먼에 대한 적개심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올트먼 역시 머스크를 두고 "그게 뭐든 나는 갖고 싶지 않은 스타일을 지닌 사람"이라고 비꼬았다.

머스크가 "출범 당시 맺은 설립 계약서를 위반했다"면서 지난달 말 올트먼과 오픈AI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두 사람의 갈등은 새 국면을 맞았다. 오픈AI가 머스크의 주장대로 설립 목적과 반대되는 길을 가고 있는지 아닌지, 이제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소장의 분량은 총 35쪽이다. 그간 파편적으로 알려져 있던 오픈AI의 설립 취지와 과정, 설립 이후의 행보 등이 거의 시간 순서대로 상세히 기술돼 있다. 물론 머스크의 시선에서 쓰였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소장 내용과 오픈AI의 반박문, 외신 보도 등을 두루 살펴 소송의 배경과 쟁점, 전망 등을 짚어봤다.

"나 없었으면 오픈AI도 없었다" 머스크의 지분 챙기기

소장 초반 머스크는 오픈AI 설립에 자신이 특별한 역할을 했음을 공들여 설명한다. 자신이 이 소송을 제기할 충분한 자격을 갖췄음을 이해시키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오픈AI란 회사 이름은 '내가' 지었다. △구글 출신의 천재 과학자 일리야 수츠케버를 비롯한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모은 것도 '나'였다. △이들의 급여를 비롯한 초기 설립 자금의 상당 부분도 '내가' 댔다.

머스크는 사익이 아닌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반인공지능(AGI)을 개발하고, 상업적인 이유로 기술을 비공개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회사를 비영리법인으로 만들고 사명에도 '오픈'을 넣은 것이라 설명한다. 그는 2016년부터 2020년 9월까지 오픈AI에 약 4,400만 달러(약 580억 원)를 기부했다고도 적시했다. 그러면서 소장은 분명히 한다. "머스크의 공헌과 초기 리더십이 없었다면 오픈AI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올트먼 측도 딱히 반박한 적이 없다. 적어도 머스크가 오픈AI 탄생에 큰 기여를 한 점만큼은 '팩트'인 셈이다.

일론 머스크 대 샘 올트먼 소송 쟁점. 그래픽=신동준 기자

일론 머스크 대 샘 올트먼 소송 쟁점. 그래픽=신동준 기자


머스크 "우림 보호 위한 기부금이 벌목에 쓰인 격"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2019년 올트먼 주도로 오픈AI가 산하에 영리를 추구하는 자회사(오픈AI LP)를 설립한 뒤로 보인다. 오픈AI는 AI 개발에 예상을 훨씬 웃도는 천문학적 금액이 들어가자, 수익 사업을 하는 자회사를 비영리기업 아래에 두고 여느 스타트업처럼 투자를 받기 시작한다. 자회사가 버는 돈이 일정 액수를 넘으면 모두 비영리 모회사에 기부하는 조건을 달았다. 당시 머스크는 테슬라에 집중하기 위해 오픈AI 이사직을 내려놓은 상태였으나 오픈AI에 대한 기부는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머스크가 오픈AI와 연을 완전히 끊은 데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투자가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MS는 오픈AI에 총 130억 달러(약 17조 원)를 투자하고 지분 49%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머스크는 "현재의 오픈AI는 사실상 MS의 자회사로 전락한 상태"라 주장한다. 거대언어모델(LLM) GPT-4 같은 성취를 MS에 비공개로 제공함으로써 세계 최대 기술기업인 MS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창립 계약에 대한 철저한 배신이자 오픈AI의 사명(기업 이념)을 위배한 것입니다. 아마존 열대우림을 보호하는 것을 임무라 밝힌 비영리단체에 기부했는데, 이 단체가 기부금을 이용해 영리 벌목회사를 설립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게 바로 오픈AI의 이야기입니다." 머스크의 말이다.

결국 머스크가 소송을 통해 요구하고 나선 것은 이렇게 요약된다. △오픈AI와 올트먼이 설립 당시 계약에 반하는 행보를 해 결과적으로 나를 속인 게 됐다. 그러니 내가 기부한 전액과 함께 이를 기반으로 얻은 이익을 돌려 달라. △오픈AI는 설립 계약으로 돌아가 AI 연구 성과 및 기술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영리 행위, 특히 MS를 위한 영리 추구를 멈춰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AFP 연합뉴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AFP 연합뉴스


'과거엔 이래 놓고 이제 와서'... 반박문 공개한 오픈AI

오픈AI는 지난 5일 홈페이지를 통해 머스크의 주장에 대한 반박문을 공개했다. 올트먼을 포함한 공동 창업자 5명이 이름을 올렸다. 단 한 쪽짜리 입장문엔 '오픈AI가 잘되니 머스크가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한다'는 불쾌함이 드러났다.

이들의 입장은 구체적으로 이랬다. △영리 목적의 자회사를 설립한 건 영리회사로 탈바꿈하려는 게 아니라 비영리기업으로 남기 위한 것이었다. 막대한 개발 자금을 충당하려면 영리 행위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머스크도 이해했다. △머스크는 오픈AI와 테슬라를 합병하거나 오픈AI에 대한 전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개인이 절대적인 통제권을 갖는 것이 사명에 어긋난다고 느꼈기 때문에 거절했고, 그러자 머스크가 '내가 직접 하겠다'며 회사를 떠났다. △오픈AI는 소스를 공개하진 않지만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명을 다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은 머스크가 자신들과 함께하던 시절부터 이미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것만이 사명에 부합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2016년 당시 머스크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그 증거로 공개했다. 이 메일에서 수츠케버는 "AI 구축에 가까워질수록 덜 개방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오픈AI의 '오픈'은 모든 사람이 AI로부터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지, 꼭 (기반이 되는) 과학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했고, 이에 머스크는 "그렇다"(Yup)고 했다.

머스크 소송 진의는... "분풀이" vs "AI 민주화 향한 진정성"

머스크가 워낙 안하무인 이미지가 강한 탓에, 실리콘밸리에선 머스크의 소송 제기를 질투심의 발로로 보기도 한다. 오픈AI가 자신의 합병 등 제안을 뿌리치고 MS의 손을 잡음으로써 결과적으로 MS를 키워준 데 화가 나 분풀이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진정성이 아예 없다고 보긴 어렵다는 시각도 많다. 그가 한결같이 AI의 민주화를 주장해왔다는 점에서다.

머스크의 본심이 무엇이든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오픈AI가 공익 목적을 다하고 있는지, 연구 내용을 오픈소스로 공개하지 않더라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사실상 MS 자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건지 등과 관련한 사법적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업계 전체의 AI 개발 방향과 속도를 바꾸게 될지도 모른다. 이 전쟁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용어 설명

-일반인공지능(AGI):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나, 머스크는 AGI를 '인간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작업에 대한 지능을 갖춘 기계'라고 소장에서 정의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처럼 특정 분야에만 강한 AI가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인간에 버금가는 능력을 보이는 AI가 AGI란 것이다.

-오픈소스(open source): 소프트웨어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소스코드를 누구나 무료로 이용, 수정, 재배포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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