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영부인의 자격

입력
2024.03.06 04:30
27면
0 0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2월 15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으로 귀국했다. 김 여사는 이날 이후 80일 넘게 공개 일정에 나서지 않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2월 15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으로 귀국했다. 김 여사는 이날 이후 80일 넘게 공개 일정에 나서지 않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엄밀히 말해서 퍼스트레이디는 직업이 아니다. 정부의 공식 직함도 아니다. 연봉도, 정해진 의무도 없다. 대통령에게 달린 사이드카 같은 자리일 뿐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배우자인 미셸 오바마는 자서전 ‘비커밍(Becoming)’에서 퍼스트레이디라는 자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이나 지위는 헌법에도, 정부 직제에도 없다.

그러나 공식 업무는 수행한다. 게다가 대통령과 백악관에 살고, 국빈 방문 같은 외교 무대에도 함께 선다. 대통령의 배우자로서 의전과 예우도 받는다. 선거 때는 가장 막강한 후원자이자 파트너다. 미국의 경우엔 당선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 때 “한 명 가격에 둘을(Two for the price of one)”을 외쳤다. 다른 한 명은 힐러리 클린턴을 일컫는 말이다. 미셸 오바마 역시 오바마 대통령의 든든한 국정 동반자였다.

“선출되거나 임명되지 않은 청와대 안의 유일한 존재. 법으로 정해진 권한과 책임도 없으면서 많은 공식적, 비공식적 역할을 수행하는 특별한 존재.”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생전에 자서전 ‘동행’에서 대통령 배우자라는 존재를 두고 이렇게 썼다. 그러니 하기에 따라선 ‘내조’에 그칠 수도, 전문 분야를 살려 독자적인 활동을 할 수도 있는 게 영부인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배우자 질 바이든이 “우리는 선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영부인의) 역할을 정의해야 한다”고 했듯. 결국 영부인의 역할 범주는 ‘하기 나름’이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어떤 영부인이든 동일하다. 국가원수의 배우자이자 가족으로서 뒤따르는 윤리 말이다. 국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는 법적 책임은 말해 무엇하나. 게다가 책임이란 본디 그 자리가 지닌 무게에 비례하는 법이다.

청와대 본관에 걸린 역대 영부인들의 사진. 청와대 개방을 하루 앞둔 2022년 5월 25일 언론 공개 행사에서 촬영된 것. 뉴시스

청와대 본관에 걸린 역대 영부인들의 사진. 청와대 개방을 하루 앞둔 2022년 5월 25일 언론 공개 행사에서 촬영된 것.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침묵하고 있다. ‘디올백’ 수수 논란부터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개입 의혹까지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현안에 입을 닫고 있다. 80일 넘게 두문불출하는 사이 의구심과 논란만 커지고 있다.

대신 주위에서 방어하느라 난리다. 심지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는 방송 출연자가 약칭 ‘김건희특검법’을 ‘김건희여사특검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며 행정지도인 권고 결정을 했다. “대통령 부인에게 ‘여사’도 안 붙이고, ‘씨’도 안 붙였다. 이런 건 진행자가 (바로) 잡아줘야 한다.”(손형기 위원), “대통령 부인에 관련해서는 아무리 야당 인사라고 해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백선기 위원장) 출연자가 지칭한 건 대통령 부인이 아닌 그가 관련된 의혹을 밝힐 특검법이었는데도 ‘여사’를 붙이지 않았다며 징계를 한 것이다. 40자가 넘는 이 법안의 정식 명칭에도 ‘여사’는 없다. 비판과 풍자가 잇달았다. 상황이 이런데 대통령실도 김 여사도 조용하다.

영부인에게는 대통령 못지않게 기대되는 덕목이 있다. 자격이다. 품격까지 갈 것도 없다. 자격은 책임에서 나온다. 존경받는 영부인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사과할 건 사과하고, 해명할 일에는 해명하는 상식을 갖춘 영부인이기를 국민은 바란다. 예우는 ‘여사’라는 호칭을 강요한다고 갖춰지는 건 아니다. 존경받는 영부인의 자격, 누구보다 영부인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김지은 버티컬콘텐츠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