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 송 감독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
오프닝 신에 담긴 자전적 이야기
나영(그레타 리)은 12세에 가족과 이민을 떠나고 24년 만에 첫사랑 해성(유태오)과 재회한다. 해성은 어른이지만 나영 앞에선 순간적으로 어린아이처럼 변해야 했다. 배우 유태오의 활약이 중요했던 이유다.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은 작은 감정도 크게 보여주는 유태오의 얼굴이 타임스퀘어 전광판 같았다고 말했다.
셀린 송 감독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작품은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과 해성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온 그들의 인연을 돌아보는 이틀간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셀린 송 감독의 데뷔작이다. 그는 제76회 미국감독조합상(DGA Awards) 첫 장편영화부문 감독상(Outstanding Directorial Achievement in First-Time Feature Film)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는 등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계 감독이 이 상을 거머쥔 것은 셀린 송 감독이 처음이다.
한국에서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셀린 송 감독은 "태어나서 12세까지 산 한국에서 이 영화를 나누는 게 감명 깊고 기대되고 감사하다"며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앞서 연극 '엔들링스(Endlings)'를 미국 무대에 올려 극찬받기도 했던 그는 "'패스트 라이브즈'는 영화적 이야기라고 생각해 (연극이 아닌) 영화로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셀린 송 감독은 '패스트 라이브즈'의 장소를 중요하게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장소, 시간 때문에 해성이와 나영이가 함께할 수 없는 거 아닌가. 서울과 뉴욕이 제대로 보이는 것, 그리고 이 두 공간이 얼마나 다른지가 중요했다"고 전했다. 로케이션에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들어갔다. "로케이션이 스토리를 얘기해야 했다"는 게 셀린 송의 설명이다.
셀린 송 감독은 "해성이랑 나영이가 어린 시절 한국에서 '안녕'을 하고 헤어지는 골목, 어른이 돼서 차를 기다리고 안녕을 하는 길을 찾는데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로케이션 매니저에게 모순적인 디렉션을 했다고 전했다. 특별하지만 특별하게 보지 않으면 그 사실을 느끼지 못할 만한 길을 찾았단다. "'당신의 서울이 뭐냐'고 물으면 남산타워라고 답하지 않잖아요. 살고 있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곳을 원했죠. 그러면서도 정말 아름답고 의미 있고 소중한 곳이요."
'패스트 라이브즈'의 연출법 또한 세계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셀린 송 감독은 "카메라가 너무 느껴지진 않는 게 중요했다. 카메라가 너무 의식되면 몰입이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카메라를 어딘가에 두고 컷도 하지 않은 신이 있었다. 등장인물의 대화를 엿듣는다고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해성 역으로 극을 이끈 유태오는 처음부터 특별했다. 셀린 송 감독은 "유태오 배우가 들어왔을 때 '이 사람이 해성인가보다' 싶었다"고 전했다. 그는 유태오의 안에 어린아이와 어른이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평소에는 어른 같아 보이지만 웃거나 농담을 할 때는 아이처럼 느껴졌단다. 어른이다가도 순간적으로 나영과의 추억이 있는 어린이의 모습이 보여야 하는 해성과 잘 어울리는 이유였다. 감정 표현 능력 또한 셀린 송 감독이 유태오에게 빠져들게 만들었다. "유태오 배우는 타임스퀘어 전광판 같은 얼굴을 갖고 있어요. 작은 감정도 크게 보이거든요. 말없이 해야 하는 표현이 많아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패스트 라이브즈'에는 셀린 송 감독이 생각하는 남성성이 녹아 있다. 그는 "남성성에 관심이 많다. 우리가 남성성 얘기를 할 때 마초를 떠올리거나 '내 여자니까 절대 건들지 마'라고 말하는 모습을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남성성은 그렇지 않다. 내가 추구하는 남성성은 자신도 상처받고 질투 나지만 보호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런 감정들을 보류해 두는 거다"라고 했다. 셀린 송 감독의 남성성에 대한 이야기는 '패스트 라이브즈'에 여운을 더했다.
우버가 오기 전 해성과 나영이 마주하는 장면 또한 울림을 안긴다. 셀린 송 감독은 "언제 우버가 올지 내가 정하는 거였다. 해성이가 2분이라고 말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주관적이고 모순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버 언제와?' '10초만 더 늦게 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 때 차가 오도록 손짓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해성 나영이가 차가 오면 놀란다. 그건 진짜 놀란 거다. 다들 차가 언제 올지 몰랐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서 더욱 시선을 모은다. 셀린 송 감독은 과거 한국에서 놀러 온 친구와 미국인 남편 사이에 앉아 통역을 해준 적이 있다. 그 순간 단순히 언어와 문화를 해석해 주는 것을 넘어 자신의 역사와 정체성까지 설명하는 기분이 들었단다. 당시를 떠올리던 그는 "특별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이때의 경험은 오프닝 신이 됐다.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만큼 작품은 관객들에게 더욱 진솔하게 다가가는 중이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오는 6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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