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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의 독립운동가들을 회상하며

입력
2024.02.29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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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승만 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 세계의 대사관이 줄지어 선 미 워싱턴 시내의 매사추세츠 애비뉴. 일명 대사관 거리를 걷다가 보면 자그마한 정원에서 이색적인 인물을 만나게 된다. 체코의 국부로 칭송받는 초대 대통령 토마시 마사리크다. 워싱턴에는 간디, 만델라 등 각국의 국부나 초대 대통령 등 정체성을 상징하는 외국인의 동상이 150여 개가 설치돼 있다.

주미대사관 총영사관 앞에는 갑신정변 후 미국에 망명해 의사로 활동하며 애국 계몽운동을 전개한 최초의 한국계 시민권자 서재필 선생의 동상이 있다. 워싱턴 남쪽 방향 4시간 거리에 위치한 로어노크대학에 김규식 박사 기념표지판이 있다. 이는 컴벌랜드중학교 학생과 교사들의 추천에 따라 버지니아주 정부가 김규식을 역사적 인물로 선정한 데 따른 것이다.

한민족에게 워싱턴은 이승만과 김규식 등 독립운동가의 숨결을 간직한 항일 유적지이다. 3·1운동 발발 직후 이승만은 한성임시정부 집정관 총재로서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두고 파리협상회의 대표 김규식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구미위원부는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한편, 독립공채표를 발행해 독립자금을 마련했다. 1941년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단행하자 이승만은 주미위원회를 설치해 조선 임시정부 승인, 대일전 참전, 전후 평화회담 참석 등을 준비했다. 태평양전쟁에 따라 적성국민으로 취급된 재미 한국인의 법적 신분 문제도 미 정부에 청원해 원만하게 해결했다. 이승만은 1943년 4월 아메리칸대에 임시정부 수립 24주년을 기념해 제주 왕벚나무 심기행사를 개최하고, 벚꽃축제를 장식한 벚나무의 원산지가 한국임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기억할 수 있는 곳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구미위원회가 있던 워싱턴의 H가 1,314번지 소재 콘티넨털 트러스트 빌딩은 사라졌다. 주미위원회 소재 16가 4,700번지에는 제7일 안식일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다만 아메리칸대에는 이승만이 기념식수를 했음을 알려주는 자그마한 표식만이 남아 있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105년이 되는 지금, 온전한 한반도의 독립을 염원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열정을 떠올려 본다. 독립운동과 건국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 초석을 세우고 한미동맹의 근간을 만든 이승만, 민족 통합과 독립의 대의를 줄기차게 견지하면서 미 현지 중학생들에게까지 역사 인물로 추앙받은 김규식 등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보여준 탁월한 시대적 안목과 외교의 힘이 주는 울림은 크다.

워싱턴의 독립운동가들은 암울한 국제정세 속에서 한미 우호관계를 다진 외교 사절이기도 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보편적 인권, 법치의 가치를 체득하며 조국 근대화의 기초를 놓았다. 워싱턴의 독립운동가들이 다시 워싱턴을 방문하면 어떤 생각을 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권세중 전 워싱턴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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