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주의 '동물복지 이야기'
야생동물카페와 이동동물원 등 동물원이 아닌 시설에서의 야생동물 전시를 금지하는, 소위 ‘라쿤카페 금지법’이 시행된 지 한 달 남짓 지났다.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된 개정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은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에 따라 동물원 또는 수족관으로 허가받지 않은 시설에서 살아있는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행위는 금지됐다. 법이 국회 문턱을 넘은지 1년만에 본격 시행됐다.
‘라쿤 카페’, ‘미어캣 카페’ 등 포유류 동물을 전시하는 카페는 더 이상 새로 문을 열 수 없다. 다만, 기존에 운영하던 시설은 개정 법률 시행 전까지 영업장 소재지, 보유 동물의 종, 개체 수 등을 지자체에 신고한 경우 4년 동안 신고한 보유동물만 전시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뒀다. 즉, 이미 운영하고 있던 카페라면 4년 동안 운영할 수 있지만, 더 이상 새끼를 낳게 하거나 동물을 추가로 늘려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신고하지 않고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영업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런데 개정된 법률 시행 이후 “갑자기 카페가 문을 닫게 되어서 동물이 버려질 위험에 처했다”는 영업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이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야생동물카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조사하고 법안 마련에 힘써 온 사람 입장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법을 개정한 이유는 도심에서 발견되는 라쿤, 미어캣 등 외래종 동물이 해마다 증가하는 까닭이었다. 2018년에는 야생동물카페가 밀집한 서울 마포구에서 도심을 배회하는 라쿤이 무인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도심 생태계에 위협이 된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2020년 지방자치단체 유기동물보호센터에 입소된 총 304마리 외래종 야생동물 중 라쿤은 16마리로 한 달에 1마리 이상 발견됐다. 야생동물은 발견한 시민이 신고할 확률이 적으며 구조 요청에 응하지 않는 지방자치단체도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기되거나 영업장을 탈출하는 동물은 더 많았을 수 있다.
카페는 야생동물을 애완용으로 소비하려는 수요를 높일 뿐 아니라, 직접 외래동물을 번식해 가정에 분양하는 역할도 해 왔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2019년 발간한 ‘야생동물카페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카페 12개소 중 7개소에서 야생동물을 판매하고 있었고, 이 중에는 온라인 카페를 통해 분양하는 업체도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야생동물을 기르기 위해 갖춰야 하는 환경이나 자격 조건은 없다. ‘귀여운데, 나도 한 번 키워볼까?’하는 생각으로 쉽게 구매했다가 성체가 되어 다루기 어려워지면 유기 충동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즉, 지금의 현상은 카페를 금지해서 유기되는 동물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야생동물카페를 법적 사각지대에 방치해 유기되는 동물이 증가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추가 피해를 방지할 목적으로 법을 개정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문을 닫는 카페의 동물이 갈 곳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개정 야생생물법에는 ‘전시 금지로 인해 유기 또는 방치될 위험이 있는 동물’을 보호하는 시설을 국가가 설치할 근거가 포함됐다. 충남 서천에 외래유기동물보호센터가 설치되며, 오는 4월에 추가로 보호소가 문을 열 계획이다. 그전까지 발생하는 유기 외래동물 중 라쿤, 미어캣, 여우, 프레리도그 등 4종은 이미 2022년 전국 야생동물구조센터 10개소와 환경부가 업무협약을 체결해 임시로 보호할 수 있도록 했다. 영업자들이 법률에 따라 보유동물을 제대로 신고하고 불법적으로 동물을 늘리지 않는다면, 신고된 정보를 바탕으로 남은 4년의 유예기간 동안 보호시설 추가 건립, 공영동물원과의 협력체계 구축 등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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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유기를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규정들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미 보유하고 있는 동물을 신고한 시설이라면 동물을 유기하지는 않았는지, 혹은 동물을 더 늘리지는 않았는지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신고하지 않고 ‘버티기 장사’를 하고 있는 시설은 처분하고, 동물을 몰수할 수 있는 근거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특히 라쿤 등 유기 시 생태계 교란 위험이 큰 동물은 마이크로칩으로 동물등록을 실시해, 길에서 발견된 경우 유기한 자를 찾아내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정된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아 생긴 사각지대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도 남았다. 개정된 법은 ‘포유류 외 인수공통질병 전파 우려 및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낮은 야생동물’은 전시 금지 대상에서 제외했다. 독성이 있는 뱀 이외의 거의 모든 조류와 파충류는 동물원 허가 기준인 ‘보유동물 10종 50개체’를 넘지 않는다면 어떤 제한 없이 전시할 수 있다. 포유류 이외의 동물은 “질병 전파나 사고의 위험이 전혀 없다”고 장담할 수 없을뿐더러, 애초에 공중보건과 안전뿐 아니라 ‘동물복지’가 법 개정의 중요한 이유였음을 고려하면 모순적이다.
좁은 아크릴 상자에서 새를 과밀사육하고, 횃대 등 적절한 구조물은 충분히 제공되지 않고, 관람객이 동물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옮기는데도 동물이 몸을 피할 수 없는 앵무새 카페의 환경은 라쿤카페와 그리 다르지 않다. 질병이나 부상이 의심되는데도 적절한 수의학적 관리를 받지 못하는 현실 역시 포유류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체험동물원에서 왕뱀을 목에 둘렀다가 어린 관람객이 공격당하는 사고도 발생하고 있지만, 파충류는 전시 금지 대상 종이 아니기 때문에 카페에서는 아무 규제를 받지 않는다.
당장 모든 조류, 파충류의 전시 금지가 어렵다면, 대형앵무 등 단조로운 실내 시설에서 사육하기 극도로 부적합한 종, 왕뱀 등 탈출 및 인명에 대한 위해 위험이 있어 고도로 전문적인 관리가 요구되는 종은 전시 금지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또한 사람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 익숙한 반려동물일지라도, 카페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전시나 체험 대상으로 사용하는 것이 동물과 사람의 바람직한 관계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그동안 카페 영업자들은 법의 빈틈을 이용해 수익을 올려왔다. 애초에 야생동물 관리를 촘촘하게 하는 국가라면 운영 자체가 불가능했을 사업 모델이다. 여러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충분한 유예기간 후 영업을 규제하고 동물들의 여생은 국가가 보호하겠다는데도 영업자의 경제적 손실이 가장 큰 걱정거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코로나19 이후 카페의 숫자도, 관람객도 줄고 있다는 점이다. 동물보호 인식이 성장하면서 앞으로 동물을 만지고 소비하고 싶어 하는 수요는 더 줄어들 것이다. 한술 밥에 배부를 수 없는 것처럼, 한 번의 법 개정으로 갇힌 상태의 야생동물을 둘러싼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개정된 법은 빈틈없이 시행되어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하고, 지난 개정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은 추가 입법을 통해 개선해야 한다. 아직 야생동물을 애완화해 소비하려는 행태가 남아 있는 점도 해결해야 한다. 이런 인식이 동물복지와 생태계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 경각심을 갖도록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홍보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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