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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법원, '인종 감추고 경험 고려' 명문고 입학 정책에 "문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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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법원, '인종 감추고 경험 고려' 명문고 입학 정책에 "문제없다"

입력
2024.02.21 19:00
수정
2024.02.2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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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가 낸 소송 상고심 '심리 없이' 기각
'경험' 통해 인종 간접 반영한 정책 실시 후
아시아계 줄고, 흑인·히스패닉·백인 늘어나
지난해 '소수 인종 우대' 폐기 결정과 대비

미국 수도 워싱턴에 위치한 연방대법원 청사 전경. 워싱턴=AP 연합뉴스

미국 수도 워싱턴에 위치한 연방대법원 청사 전경. 워싱턴=AP 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한 명문 고교의 '인종적 변수 간접 반영' 입학 정책에 사실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대학 입시에서의 '소수 인종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어퍼머티브 액션)에는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인종을 숨기고 '경험'을 채점하는 방식에 대해선 용인한 것이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미 연방대법원은 이날 토머스제퍼슨과학기술고(TJ) 입학 정책이 차별이라며 제기된 소송의 상고심에서 심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TJ의 입학 제도에 관여하지 않기로 한 것인데, 한국 대법원의 '심리 불속행 기각'과 유사한 결론을 내린 셈이다. 이로써 '적법한 입시 제도'라고 판단한 원심(2심)이 확정됐다.

다양성 위해 '경험 요인' 고려… 소수의견 "그것도 차별"

미국 최고의 공립 고교 중 하나로 평가받는 버지니아주 소재 TJ는 2020년 입학 제도를 바꿨다. 그해 5월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하면서 미국 전역이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로 들끓던 때였다. TJ도 '인종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따라 입시 정책을 손봤다. 입학시험과 원서 비용을 없애고, 지역 내 중학교 학생들에게 문을 넓혔다. 그리고 '인종 중립' 정책을 내세웠다. 입시 담당자가 학생의 인종·성별·성명을 모르게 하되 △저소득층 여부 △영어 학습 수준 △교육 기회가 제한된 중학교 출신 여부 등 '경험적 요인'을 고려하도록 한 정책이다.

새 입시 제도는 인종 다양성을 향상시켰다. 아시아계 입학생 비율은 73%에서 54%로 급감한 반면, 흑인(2%→8%)·히스패닉(라틴계·3%→11%)·백인(18%→22%)은 증가했다. 그러자 아시아계 학부모가 중심인 단체 'TJ연합'이 "차별적인 입학 정책"이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인종 균형 맞추기로, 명백히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이를 뒤집고 "새 입시 정책이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차별적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학교 측이 차별적 의도로 인종 중립 정책을 채택했다고 확인되지도 않는다"고 봤다. 현재도 입학생 대부분이 아시아계라는 점이 고려됐다. TJ연합은 상고했으나, 대법원이 심리하지 않기로 하면서 2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이같이 결정한 이유는 따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보수 성향인 새뮤얼 얼리토·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이에 반대하는 소수의견을 냈다. 얼리토 대법관은 "(TJ 정책을 인정한) 2심 판결의 본질은 '고의적 인종차별도 너무 심각하지 않다면 합헌'이라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소수 인종 우대=위헌" 대법 판단 '우회' 늘어날까

지난해 6월 '소수인종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의 위헌 여부 결정을 앞둔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앞에서 찬반 양측 시위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6월 '소수인종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의 위헌 여부 결정을 앞둔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앞에서 찬반 양측 시위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대법원의 이번 판단은 지난해 6월 미국 사회를 뒤흔든 '어퍼머티브 액션 폐기' 결정과 비교해 주목받고 있다. 흑인·히스패닉 학생들이 주된 수혜자였던 '소수 인종 우대' 대학 입시 정책은 '현존하는 인종차별을 반영해야 실질적 평등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 60년 가까이 유지됐는데, 대법원은 앞선 세 차례의 합헌 결정과 달리 이를 위헌이라고 봤다. 당시 다수 의견을 작성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학생은 인종이 아닌 개인으로서 경험에 근거해 평가돼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인종 변수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위헌 여부가 갈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종 중립'을 내세운 TJ의 선례가 일종의 '우회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소냐 스타 시카고대 교수(법학)는 "대학이 입학에 인종을 고려하지 않으면서도 캠퍼스 내 (인종) 다양성을 이룰 방법을 찾게 됐다"며 "인종 중립 입학에 도전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김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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