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공고 규정도 지켜야 할 내용"
4대강 사업(이명박 정부의 한강·낙동강·영산강·금강 정비사업) 입찰에서 담합에 가담한 건설회사들이 정부로부터 받은 설계보상비를 돌려줘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설계보상비는 입찰에 참여했으나 낙찰받지 못한 업체에게 설계비 일부를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설계·시공사 86곳을 상대로 제기한 244억 원 규모의 설계보상비 반환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지난달 25일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해당 업체들은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유역 정비사업에 공동수급체를 꾸려 참여했지만 입찰에서 탈락했다. 22조 원의 예산이 투입된 4대강 사업 입찰에서, 업체들이 가격을 합의해 일부러 낮은 점수를 받아 탈락하도록 설계서를 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사업에 참가한 건설사들의 담합이 드러났다. 이에 수자원공사는 업체들이 이미 수령한 설계보상비를 반환하라는 취지로 2014년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수자원공사가 내건 공사 입찰 공고에 나온 '설계보상비 반환' 관련 규정을 수자원공사와 업체들 사이에 맺은 '계약'으로 볼 것인지였다. 당시 입찰 공고에는 '입찰 무효에 해당하는 사실(담합 등)이 발견되면 설계비 보상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1심은 이 규정을 '입찰 참여 업체가 지켜야 할 계약'으로 보고 수자원공사의 청구 대부분을 인용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입찰공고는 청약(확정적 의사표시)이 아니라 청약의 유인(청약을 할 것을 요구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면서 "설계보상비 반환 계약이 성립됐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이번에 대법원은 2심을 다시 뒤집고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입찰공고 주체(수자원공사)가 설계보상비 관련 규정을 정했고 입찰자(건설사)가 이에 응해 참여했다면, 입찰공고 주체와 탈락자 사이에는 설계보상비 지급에 관한 계약이 체결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동수급체에 참여한 대표사·시공사·설계사 중 어디까지 설계보상비의 지급 책임을 지는지에 대해선 대표사와 시공사가 분담해야 한다고 봤다. 이 역시 담합을 주도한 대표사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항소심과 다른 판단이다. 대법원은 "시공사들은 연대해 설계보상비를 반환할 의무가 있고 직접 담합행위에 관여했는지 여부에 따라 책임 유무를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설계사들은 정해진 용역을 이행해 대가를 받는 형태로 계약했다는 점을 들어 분담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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