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40만 부 팔린 리숴 '상나라 정벌' 출간
그간 쌓인 고고학 발굴 연구 성과를 토대로
상나라의 피비린내 나는 인신공양제사 복원
상주 혁명과 주역의 탄생, 공자의 침묵까지
하상주 고대사에 대한 가장 드라마틱한 해석
책을 펴기 전 우선 미국 인류학자 로타 본 팔켄하우젠의 '사회고고학'부터. 공식 기록은 오염이 심하다. '바이든 - 날리면' 사태에서 보듯 소위 21세기 자유민주국가라는 곳에서도 공식 기록에 대한 국가권력의 집착은 집요한데, 고대 절대 왕정은 그보다 더 했을 것이다. 그래서 팔켄하우젠은 문헌자료 기반 위에 고고학 자료를 해석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고고학 자료 토대 위에서 문헌자료를 해석하자 제안하고 그걸 '사회고고학'이라 불렀다.
'상나라 정벌'은 이 사회고고학이 중국 고대 하상주 역사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여주면서 동아시아 전근대 사회에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한 주(周)나라와 공자, 그리고 주역에 얽힌 비밀에까지 도전하는 책이다. 자료, 필력, 스토리텔링 등 모든 게 너무나 드라마틱해서 잔혹하고 잔인하고 선정적인 넷플릭스라면 50부작 정도는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이야기다.
고대 중국의 잔혹한 인신공양제사
핵심 키워드는 '인신공양제사'다. 말 그대로 제사 때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1,000쪽에 육박하는 이 책의 앞부분 절반은 사람을 썰어 땅에 묻은 이야기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과장이 아니다. 발굴작업을 하면 산 채로 머리를 자르고 가슴을 부수고, 통째 반으로 가르거나 다리를 차례로 자르거나 하는 식의, 인체 해체 수준으로 칼질해 댄 인골들이 줄 잇는다. 신석기 후기부터 약 1,000년여간 지속된 인신공양제사의 흔적으로 저자는 상나라 때 절정을 이뤘다고 본다.
그래서 상나라 마지막 왕인 주(紂)왕이 주지육림(酒池肉林) 했다는 건 식욕과 색욕에 대한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실제 제사에서 술에 취해 몽롱한 상태에서 사람을 썰어 그 고기를... (아, 이건 책을 직접 보는 게 낫겠다.) 설마 싶겠지만 인신공양제사는 고대에 널리 퍼진 풍속이기도 했고, 고대 중국사에 관심 있는 이들은 간략하게나마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 문왕과 무왕은 인간 사냥꾼
압권은 이어지는 역사의 재구성이다. 저자에 따르면 주나라의 상나라 정벌은 이 잔혹한 인신공양제사에 대한 반작용이다. 주나라는 원래 제사에 쓸 인간 희생물인 강(羌)족 사람을 사냥해다 상나라에 바치는 일을 하던 무리였다. 주 문왕은 맏아들 백읍고마저 희생물로 바치게 되고 아들의 시신으로 만든... (아, 이 얘기도 여기까지만.)
주 문왕은 강태공을 포섭한다. 강태공은 사냥감이었던 강(羌)족 출신이었다. 비천한 종족이라 도살장에서 일했기에 상나라가 최고신 '상제'와 대화하는 점복의 비밀을 안다. 주 문왕은 이 비밀을 얻어 치밀한 연구 끝에 상나라 정벌을 위한 혁명을 추진한다. 그 혁명 추진 계획이 바로 역경(易經), 주나라의 역이란 의미에서 주역(周易)이다.
주공은 고대 중국의 문화혁명가
혁명에 성공한 주나라는 인신공양제사를 없애는데, 저자는 그 핵심인물로 주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이었던 주공을 꼽는다. 주공은 인신공양제사는 물론, 그 제사를 위해 인간 사냥을 벌였던 자신들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도 지운다. 은밀한 혁명의 기록인 역경은 아버지 주 문왕을 생각해 남겨두지만 해석을 완전 달리한 상전(象傳)을 덧붙여 혁명의 기억도 차단했다.
하나만 예로 들자면 신문에 실리는 '오늘의 운세'엔 간혹 '동남쪽이 길하다' '서북쪽에 좋은 소식 있다' 같은 얘기가 나온다. 그건 원래 주나라가 상나라 공격을 위해 여기저기 동맹을 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점괘다. 주 문왕과 무왕이 정치적 혁명가였다면, 주공은 문화적 혁명가였던 셈이다.
공자에 얽힌 '위편삼절' 고사의 비밀
하지만 오래 지속된 전통은 한순간 증발하지 않는다. 500여 년 뒤 공자가 이 비밀을 눈치챘다. 말년에 역경을 너무 많이 읽어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고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저자는 공자가 따지고 보면 상족의 후예였기에 주공의 비밀을 알고도 덮었다고 본다. 꿈에서라도 주공을 만나고 싶다던, 죽기 직전 공자의 한탄은 사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으나 분명히 말하지 못"한 공자의 심정을 드러낸 이야기다.
엄청난 속도감으로 읽히는 1,000쪽 육박하는 벽돌책
앞서 언급한 팔켄하우젠은 '주공의 문화혁명'이란 공자의 정치적 창작물로, 공자의 의도는 자신이 태어난 노나라의 정치적 영향력을 드높이려는 데 있었다고 해석한 바 있다.
그에 비하자면 저자의 해석은 지나치게 중국 친화적이긴 한데, 그 해석에 대한 평가야 무엇이든 주말 하루 날 잡아서 펴 드는 순간 엄청난 속도로 읽게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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