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림박물관 토기 특별전
'공경과 장엄을 담은 토기'
자연스러운 흙빛, 간결한 형태, 소박한 멋에서 풍기는 여유가 멋스럽다. 고대인들이 다산과 풍요를 바라며 손수 새긴 기하학무늬는 정교하고 경이롭다. 생각을 끊고 단순한 자태를 바라보고 있다 보면 '불멍' '물멍'(장작불이나 파도 등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을 할 때 못지않은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된다. 4, 5세기 신라·가야인들이 일상생활과 의례에 사용한 '토기' 얘기다.
서울 강남구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올해 첫 특별전인 '공경과 장엄을 담은 토기'가 열리고 있다. 신라와 가야에서 사용한 토기 항아리와 그릇받침 등 200여 점을 3개 전시실에서 선보인다.
점토를 빚어 섭씨 600~1,200도씨 사이에서 구워낸 토기는 한반도 최초의 그릇이다. 1만여 년 가까이 한국인의 삶과 함께했다. 청자, 분청사기, 백자에 세상의 경탄이 쏟아진 것과 달리 토기는 소홀히 취급되곤 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개최된 이번 전시는 2012년 호림박물관 개관 30주년 기념전 '토기' 이후 12년 만의 대규모 토기 특별전이다.
토기는 죽은 이를 추모하는 의례의 중심에 있던 제기였다. 삼국시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위해 장례를 후하게 지냈다. 권력과 권위를 과시하려는 뜻도 있었지만,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 생활할 물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무덤에 껴묻거리(시신과 함께 묻는 물건)로 토기와 화려한 장신구 등을 함께 매장했다. 배곯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음식물도 묻었다.
항아리와 함께 출토되는 그릇받침은 항아리의 크기를 더욱 크고 화려하게 보이도록 장식하는 토기다. 제례의 장엄함을 더하는 도구였던 셈. 특별하게 꾸며진 공간에 외따로 전시된 '토기발형그릇받침 및 원저장경호'(4세기 삼국시대)는 물결무늬가 정확하게 조화를 이루는 항아리와 그릇받침 세트다. 이원광 호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하나의 세트를 이뤄 출토된 유일한 토기"라며 "확실히 기획된 문양을 볼 때 특별한 행사를 위해 주문 제작한 항아리와 그릇받침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토기 하나하나를 온전하게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세심하게 마련돼 있다. 제2전시실에는 그릇받침 6점을 마주하고 앉을 수 있는 석재 의자가 놓여 있다. 낮은 조도 아래 멍하게 토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명상실의 수행자가 된 기분이 든다. 신라와 가야 토기의 차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수장고 콘셉트로 전시한 공간도 있다. 그릇받침 토기 60점을 유리벽 하나 없이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다. 전시의 가장 끝에 조성된 가상 무덤은 실제 가야의 무덤을 참고해서 조성한 것으로, 매장문화와 부장품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전시는 5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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