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작위는 헌재 판단 대상도 아냐"
수사단계에서 구속되거나 하급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나중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경우, 억울한 구금에 대해 국가에 금전적인 보상(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외국인이 외국인보호소나 송환대기실에 구금·수용됐다가 풀려나면, 비슷한 금전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법령을 개선해야 할까. 헌법재판소는 '그런 외국인 구금 보상 규정이 없다고 해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안 한 것(부작위)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결론 냈다.
25일 헌재는 △형사보상법 2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사건과 △출입국관리법 관련 입법부작위 위헌확인 소송에서 25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했다. 입법부작위 위헌확인은 당연히 있어야 할 법이 없어서 기본권 침해를 받았음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이다.
청구인 A씨는 위조여권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2016년 난민불인정 결정을 받고 화성외국인보호소로 보내졌다. 이듬해 보호일시해제 청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그곳에서 483일간 구금됐고, 2021년 불인정 결정 취소 판결을 받으면서 끝내 체류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출입국 당국의 조치 탓에 1년이 넘는 시간을 갇혀 보낸 셈이지만, 법원은 A씨의 형사보상 청구 소송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형사보상법은 '형사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미결구금자'를 대상으로 할 뿐, 행정상 구금에 대해선 명시적 보상 규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A씨는 해당 조항이 외국인 위법 구금 피해자들에 대한 기본권을 원천적으로 제한한다고 판단,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관련 법률을 미리 만들어놓지 않은 국가의 행위는 위헌이라고도 했다. 소송엔 입국 불허 결정을 받고 인천국제공항 송환대기실에 364일간 수용됐다가 풀려난 다른 외국인 등 2명도 함께 했다.
헌재는 그러나 이들의 청구가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헌법상 입법 의무가 있는 자가 입법을 하지 않은 행위(입법부작위)를 따지는 건 헌법소원심판의 대상 자체가 아니라는 이유다. 헌재는 "외형상 특정 법률조항을 대상으로 삼고 있긴 하나, 입법부작위가 위헌이라는 취지이므로 역시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헌법이 이들에 대한 법률 제정 의무를 국가에 부여하고 있으므로, 이번 입법부작위 사건은 판단 대상이 된다"는 주장도 물리쳤다. 현행 헌법이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와 형사보상청구권을 규정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피해 외국인들에 대한 명시적인 입법위임이 있다고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헌재는 "국가는 이미 국가배상제도를 마련하고 있으므로, 기존 입법을 통한 구제절차에 어려움이나 번거로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행정상 구금으로 인한 보상 법률을 제정할 의무가 발생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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