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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떡 먹고 2000원에 영화 감상… “단, 55세 이상만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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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떡 먹고 2000원에 영화 감상… “단, 55세 이상만 오세요”

입력
2024.01.28 07:00
수정
2024.01.2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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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내 '실버영화관'
고전 영화 틀고 가래떡·다방커피 팔고
"OECD 노인 자살률 1위...외로움 때문"
인구 5명 중 1명 노인...문화 공간 절실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실버영화관을 찾은 노인들이 1,000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영화표를 예매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실버영화관을 찾은 노인들이 1,000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영화표를 예매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어르신을 위한, 어르신에 의한, 어르신의 극장이 있다.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4층 '실버영화관'. 1969년 개관한 '허리우드 극장'을 리모델링해 2009년 1월 노인 전용 영화관으로 문을 열었다. 올해로 개관 15년을 맞았다. 영화관람료부터 서비스, 운영 방식 등이 모두 노인에게 맞춰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일반 영화관들이 줄줄이 문을 닫을 때도 용케 살아남아 노인들의 '핫플레이스'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하루 평균 관객은 약 500명. 24일 오후 찾은 영화관 로비에는 엄동설한에도 수십 명의 어르신들로 북적였다.

지폐 두 장에 문화생활?… "수십 년 전 명작 그리워"

25일 노인들이 영화 관람 전 상영관 앞 로비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박시몬 기자

25일 노인들이 영화 관람 전 상영관 앞 로비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박시몬 기자

실버영화관은 55세 이상이면 영화관람료가 단돈 2,000원이다. 개관 이후 15년간 한 번도 안 올랐다. 일반 영화관(65세 이상 6,000~8,000원)이나 최근 물가 등을 감안하면 무료에 가깝다. 영화관을 찾은 이들은 "경로당이나 복지관에 가는 것보다 지폐 두 장으로 영화 한 편 보는 게 더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상영작도 노인 세대 선호에 맞췄다. 영화관은 국내외 고전을 주로 상영한다. 24, 25일은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 원작의 흑백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1948년)를 4차례 상영했다. 이밖에 '동백꽃 신사'(1974년) '장희빈'(1961년) '창공에지다'(1955년) '바람과함께사라지다'(1939년) 등이다. 강남에서 온 박모(74)씨는 "옛날 영화 중에 명작을 상영하는 날은 눈여겨봤다가 시간이 될 때마다 찾아온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김덕수(72)씨는 "수십 년 전 봤던 영화를 다시 보면 색다른 느낌으로 감동이 몰려온다"며 "요즘 영화도 좋지만 고전이 주는 추억과 감동을 느낄 수 있어 오게 된다"고 했다.

편안한 영화 관람을 위한 장치도 돋보인다. 키오스크(무인단말기)나 온라인 예매에 익숙지 않은 이들을 위해 현장에서 표를 판다. 상영관 내부 좌석 표기를 큼지막하게 쓰고, 알파벳 대신 한글로 처리했다. 스크린 영화 자막도 비교적 글자가 크고 높아 시력이 약한 노인들도 편히 볼 수 있다. 은평구에서 온 70대 관객은 "일반 영화관에서 인기 많은 영화를 보려면 예약부터 난관"이라며 "여기는 노인들만 있다 보니 혼자서도 관람하기 편해서 자주 찾게 된다"고 했다.

25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실버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이 3개에 2,000원인 가래떡구이를 먹고 있다. 박시몬 기자

25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실버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이 3개에 2,000원인 가래떡구이를 먹고 있다. 박시몬 기자

노인 세대 입맛을 반영한 간식도 있다. 팝콘과 콜라 대신 삶은 달걀, 가래떡 구이와 다방커피를 판다. 금천구에서 온 유두희(77)씨는 "예전엔 단성사, 서울극장처럼 노인들이 가는 추억의 극장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다"며 "영화를 보러 오기도 하지만, 추억을 곱씹거나 친구를 만나기도 편해 이곳을 즐겨 찾는다"고 했다. 영화관 로비에는 올드팝송이 흘러나온다.

25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실버영화관을 찾은 관객이 로비에 진열된 소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박시몬 기자

25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실버영화관을 찾은 관객이 로비에 진열된 소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박시몬 기자


"고령화 시대 어르신들의 문화 거점될 것"

1969년 개관한 허리우드 극장을 리모델링한 실버영화관 입구에 과거 극장의 모습이 남아있다. 박시몬 기자

1969년 개관한 허리우드 극장을 리모델링한 실버영화관 입구에 과거 극장의 모습이 남아있다. 박시몬 기자

영화관은 입소문을 타고 한때 하루 평균 관객이 1,5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관객이 급감했다. 감염 위험이 높은 고령층 관객이 대부분이라 당시 6개월간 문을 닫기도 했다. 영화관은 개관 후 매년 적자다. 영화관을 운영하는 김은주(50) 대표는 "15년간 임차료, 인건비, 필름 저작권료 등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하려 집까지 팔았다"고 했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노인 전용 영화관은 실버영화관을 비롯해 전국에 4곳밖에 남지 않았다. 실버영화관과 같은 건물에서 운영되는 낭만극장, 안산의 명화극장, 천안의 인생극장이다. 대구와 부산에도 노인 전용 영화관이 있었지만 코로나19를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실버영화관은 정부나 기업의 지원금, 정부 지원 사업 응모 등을 통해 간신히 적자를 메우고 있다.

적자에도 김 대표는 관람료 인상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어르신들을 상대로 돈 벌려고 하는 사업은 아니기 때문에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관람료를 올릴 수는 없다"며 "이곳만큼은 어르신들이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 대표는 고령화 시대 어르신들을 위한 문화 거점으로 영화관을 키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해 국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973만 명(18.96%)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이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 자살률이 1위를 기록하는 건 외로움 때문"이라며 "영화가 소외되는 어르신들의 '문화 친구'가 되어 곁을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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