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 사나그룹 회장 "탈북민 10명 채용할 것"
탈북 청소년 대안교육기관에 3000만 원 기부
"40년 전, 제 나이 29세에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첫발을 디뎠죠. 그때 어려웠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울컥합니다. 목숨을 걸었던 탈북민들도 그때의 저와 다를 게 없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최영철(69) 사나그룹 회장은 아프리카 케냐에서 가장 유명한 한인 기업가다. 1989년 가발 제조업체 사나그룹을 설립한 이후 동아프리카 가발 시장의 70%를 점유하는 케냐 8대 기업(납세액 기준)으로 회사를 성장시켰다.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잠비아, 짐바브웨, 모잠비크, 우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케냐 포함 10개국에 공장을 두고 1만여 명 현지인을 고용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선 삼성전자나 현대차보다 더 유명한 한국 기업이다.
그런 그가 탈북민에게 취업문을 활짝 열었다.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영호 통일부 장관을 만나 사나그룹의 한국 법인에서 탈북민 10명을 채용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최 회장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우선 한국 법인에서 10명을 고용해 업무를 익힌 뒤, 아프리카 현지 법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줄 생각"이라며 "아직 한국 사회에 알게 모르게 탈북민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데, 해외 진출 한국 기업에서 일한다면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이 탈북민 채용을 결심한 계기는 지난달 1일, 9년 만에 열린 탈북민 취업 박람회 소식을 접하면서다. "탈북보다 취업이 더 힘들다"는 그들의 얘기를 전해 듣고는, 40년 전 자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탈북민 실업률은 6.1%로 일반 국민(3%)보다 2배가량 높다.
최 회장은 "1984년 한국에서의 힘겨운 삶을 뒤로 하고, 제2의 인생을 찾아 혈혈단신 아프리카로 떠났다"며 "하지만 막상 아프리카에 도착하니 먹고사는 문제부터 사회에 녹아드는 것까지 무엇 하나 순탄한 게 없었다"고 털어놨다. 라면으로 몇 날 며칠을 보냈고, 처음 시작한 무역업이 중국의 물량 공세에 밀려 실패했을 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하기도 했다. 탈북민의 고충이 '남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최 회장은 탈북 청소년 교육을 위해 3,000만 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기부금은 남북사랑학교, 다음학교, 반석학교 등 미인가 대안교육기관 6곳에 500만 원씩 전달될 예정이다. 그는 "어려움을 딛고 정착하기 위해 애쓰는 아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케냐에서도 사나그룹의 가발 브랜드인 '엔젤스'를 붙인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탈북민들이 잘 살 수 있게 정부와 민간이 힘을 모아 통일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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