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점 인식에 매수세 실종
집 안 팔려·중개업자 줄폐업
#1.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대단지 아파트 헬리오시티 인근 중개업소엔 매매와 전·월세 매물로 2,200여 개가 나와 있다. 이는 부동산 빅데이터 회사 아실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이 빨리 안 팔리다 보니 매매를 전세로 돌린 사례도 꽤 된다"고 했다. 매매 물건이 900여 건에 이르지만 1월 거래량은 4건에 불과하다.
#2. 내달 인천의 A아파트 입주를 앞둔 직장인 최모(37)씨는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아 속이 탄다. 집이 팔려야 잔금을 치를 수 있는데, 현재로선 집이 팔릴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씨는 혹시라도 집이 팔리지 않으면 전세를 내놓을 예정이다. 하지만 세를 놓는 집주인이 많아 세입자 구하기가 별 따기라는 중개업자 말에 고민이 크다.
주택시장이 다시 극심한 거래 절벽에 빠졌다. 입주 물량이 몰린 일부 지역에선 대규모 미입주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집값 고점" 지금 집 안 산다
23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1,764건으로 지난해 1월(1,413건) 이후 11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주택 경기의 바로미터인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정부의 대대적인 규제 완화 속에 지난해 8월 3,899건까지 늘며 회복하는 듯 보였지만, 이후 빠르게 식어가는 모습이다.
경기 침체에 고금리가 여전한 데다 집값이 고점을 찍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주택 매수세가 실종된 탓이다. 한국부동산원 매매지수(서울)는 2년 연속 하락했지만, 실제 거래된 아파트를 대상으로 가격 변동을 조사하는 실거래가지수를 보면 지난해(1~11월) 서울 아파트값은 12%나 뛰었다. 2년 전 고점의 85% 수준이다. 전국 주택 거래량(2023년 1~10월 47만 건)은 정상기(1~10월 80만 건)의 절반 수준에 그쳐 침체였지만 집값만큼은 무주택자의 기대와 반대로 움직인 셈이다.
시장에선 집값이 충분히 조정받지 않았다는 심리가 팽배하다 보니 가격을 웬만큼 내리지 않고선 거래가 성사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4분기(9~12월)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의 52.6%가 전 분기보다 가격을 내린 하락 거래였다. 급매물만 아주 드물게 거래되고 있다. 여기에 올해부터 주택대출 규제(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가 강화될 예정인 데다 특례보금자리론 종료 등 여파로 주택 매수 심리는 더 가라앉을 전망이다.
2명 중 1명 "집 안 팔려 입주 못 해요"
지난 정부 때처럼 집값이 너무 치솟아도 문제지만, 지금처럼 주택 거래가 끊기다시피 해도 적잖은 사회적 손실을 유발한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집계한 지난해 12월 전국 아파트 입주율은 67.3%로 한 달 전보다 5%포인트 하락했다. 미입주 원인을 조사했더니 '기존 주택 매각 지연'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49.1%로 절반에 가까웠다. 특히 이 응답 비율은 지난해 9월(36.2%) 이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 입주에 들어간 서울 강남구 재건축 단지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는 6,702가구의 대단지지만, 현재 전·월세 매물만 5,258건에 이른다. 전세가 쏟아지다 보니 신축 아파트인데도 인근 헌 아파트보다 전셋값이 1억~2억 원 싸다. 지난해 5만 가구에 이어 올해 3만 가구 가까이 입주가 예정된 인천 부동산업계도 지난해와 같은 대규모 미입주 사태가 발생하는 건 아닌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각종 부동산 후방산업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난해 문을 닫은 공인중개사 사무소는 1만5,817곳으로 2019년 이래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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