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페이스북 통해 사연 알려져
"SOS 종이가 걸려 있다" 시민 신고
환기하려다 대피 공간에 갇힌 노인
상자에 칼로 글자 새겨 밧줄로 걸어
실수로 아파트 내 대피 공간에 홀로 갇힌 70대가 기지를 발휘해 20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출됐다.
29일 경찰청 페이스북 등에 따르면 지난달 1일 오후 1시쯤 '인천 도화동 OO아파트인데 맞은편 동 외벽에 SOS라고 적힌 종이와 밧줄이 걸려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해당 아파트에 도착한 미추홀경찰서 도화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은 고층 외벽에 SOS라고 적힌 검은색 박스가 나부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밖에서는 정확히 몇 층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경찰은 15층부터 세대마다 초인종을 눌러가며 구조 요청자를 찾기 시작했다. 곧바로 응답한 대부분 세대와 달리 28층 한 세대만은 답이 없었다. 경찰은 관리사무소 협조를 통해 해당 세대 집주인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비밀번호를 알아내 집안으로 들어갔다.
경찰은 집안 수색 중 주방 안쪽에서 "여기요"라는 작은 소리를 들었다고 전했다. 불이 났을 때 몸을 피할 수 있는 2평 남짓의 대피 공간에서 나는 소리였다. 고장 난 방화문 손잡이를 파손하자 속옷 차림의 70대 노인 A씨가 발견됐다. 전날 오후 환기를 하기 위해 대피공간에 들어갔다가 방화문이 잠겨버린 것이었다. 혼자 사는 A씨는 경찰이 올 때까지 대피 공간에 20시간 넘게 고립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휴대폰도 없었던 A씨는 기지를 발휘해 대피 공간 안에 있던 검은색 상자를 칼로 그어 'SOS'라는 글자를 새겼다. 이후 밧줄을 매달아 창문 밖으로 던져 행인이 볼 수 있게 했다. 또 라이터를 껐다 켜기를 반복하며 불빛이 반짝거리게도 했다.
속옷 차림으로 갇혀 있던 A씨는 "할아버지, 괜찮으시냐"는 경찰관의 말에 "얼어 죽을 뻔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인천의 기온은 -1.8도, 체감온도는 -6.3도로 추운 날씨였다. 그러면서도 A씨는 병원 치료를 받으라는 경찰관의 권유에는 "그 정도는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임용훈 도화지구대 4팀장은 연합뉴스에 "출동 지령을 받고 처음에는 누군가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며 "33년 근무하면서 이런 신고는 처음이었다"고 했다. 이어 "잘 보이지도 않는 고층 아파트 창문에 붙은 SOS 글자를 맞은편 동에 사는 주민이 보고 신고했다"며 "젊은 남성분이었는데 정말 고마웠다"고 전했다.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극적으로 구조된 과정이 한 편의 영화 같다", "무심코 지나쳤을 수 있는 종이를 신고해준 시민에게 내가 다 고맙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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