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일 테노레'·'딜쿠샤', 연극 '패스'
사회적 상황과 개인의 꿈 부딪혀
전통 가치·욕망 충돌하는 청년 상황 닮아
신여성 출현… 풍성해진 여성 캐릭터
일제강점기가 배경인 넷플릭스 드라마 '경성크리처'가 흥행몰이 중이다. 일제 치하 서울의 옛 이름 경성(京城)은 죽음과 삶, 폭력과 문명, 냉혹함과 인간애, 욕망과 애국심이 혼재하는 극적인 장소였다. 그래서 콘텐츠 창작자에게 매혹적인 소재이자 배경이다. 최근 공연계에서도 뮤지컬 '일 테노레'와 '딜쿠샤', 연극 '패스(PASS)', '카페 쥬에네스' 등 경성 시기를 그린 작품이 잇달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역사 뒤편에 꿈틀대는 청춘의 열망
'경성 코드'를 앞세운 최근 일제강점기 시대물은 청춘의 삶에 집중한 게 특징이다. 당시 청년들은 신문명에 매료돼 새로운 꿈을 품었다가도 독립운동 과정에서 꿈을 포기해야 했다.
라이선스 작품이 쏟아지는 연말연시 뮤지컬 성수기에 고군분투 중인 창작 초연 뮤지컬 '일 테노레'(2월 2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는 비극적이고 어두운 시대에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조선 최초 오페라 테너를 꿈꾸는 '윤이선'과 오페라 공연을 함께 준비하는 독립운동가 '서진연' '이수한' 세 사람이 이야기를 이끈다. 오페라 테너이자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 의사였던 실존 인물 이인선(1907~1960)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시작된 작품이다. 혼돈의 시기에 청년들의 어깨를 짓눌렀던 꿈의 무게와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지난해 가을 공연된 연극 '카페 쥬에네스'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가는 청춘 남녀의 우정과 사랑을 그렸다. 연극 '패스'는 일제 치하 경성과 평양의 스포츠 교류전 '경평대항축구전'을 소재로 삼았다. 1929년 시작된 경평대항축구전이 1935년 일제의 금지로 중단된 후 11년 만에 재개된 1946년의 이야기를 다룬다. 남북한 분단으로 미완이 될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 사랑 이야기다. 지난해 서울과 지역 투어 공연에 이어 올해 9, 10월 중 강원과 호남 지역에서 다시 선보일 예정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과거 일제강점기를 다룬 공연이 선악의 이분법적 구도였던 것과 달리 최근 3, 4년 사이 경성을 앞세운 공연은 시대 변화를 받아들이는 개인의 삶을 다면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청년들의 삶은 오늘날 청년 관객의 감성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며 "개인의 욕망이 시대 상황이나 전통적 가치관과 충돌해 혼란을 겪는다는 점이 그렇다"고 말했다.
고등교육받은 새로운 여성상의 출현
경성시대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달라진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다. '집안'으로 한정됐던 여성의 영역은 3·1운동 이후 교육열이 높아지면서 확장됐다. 고등교육을 받은 신여성이 출현했고,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졌다. 여성들은 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이달 14일까지 무대에 오르는 연극 '언덕의 바리'(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1920년 임신한 몸으로 평안남도 도청 폭탄 투척 의거를 감행한 안경신(1888~?) 독립운동가를 다룬다. 13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아들에게'(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미국 하와이에서 태어나 중국, 러시아, 미국 등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한 현미옥(앨리스 현·1903~1956)의 삶을 조명한다.
판타지와 현실성 그 사이 어딘가
뮤지컬에는 판타지가 필요하다. 경성은 '적당히 먼' 과거여서 뮤지컬의 배경으로 매력적이다. 현대를 배경으로 했다가 리얼리티가 약간이라도 부족하면 관객에게 외면받는다. 근대 이전을 다루면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이야기로 보이기 십상이다.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등장한 경성 시대의 세련된 패션은 차용할 이미지도 많다.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는 "현실성이 조금만 부족해도 개연성이 떨어져 보이는 동시대 이야기와 달리 경성 시대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다"며 "한일 관계 등 현재와 밀접하게 얽혀 있는 현안들이 있어서 너무 판타지로 보이지 않는 것도 창작자들 입장에선 매력"이라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