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순 전 성산포서장 참전유공 서훈 확정
경찰청 "경찰의 영웅... 국립묘지 안장 추진"
소요사태 진압 과정에서 다수 민간인이 희생된 제주 4·3 당시, 상부의 총살 명령을 거부하고 100명이 넘는 무고한 주민의 목숨을 구한 '경찰 영웅'이 75년 만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많은 국민의 생명을 지킨 최고의 공적을 세웠음에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채 쓸쓸한 말년을 보낸 '제주판 쉰들러'의 국립묘지 안장도 가능해졌다.
3일 경찰청에 따르면, 국가보훈부는 문형순(1897~1966) 전 제주 성산포경찰서장(경감)을 참전유공자로 서훈 등록한 사실을 지난달 경찰에 통보했다.
문 전 서장은 신흥무관학교(만주의 독립군 양성학교)를 졸업한 뒤, 1920년대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한 독립운동가다. 1930년대에는 중국 허베이에서 지하공작대로, 1945년에는 임시정부 광복군으로 활약했다. 광복 이후 경찰에 투신, 제주청 기동경비대장, 제주 성산포경찰서장, 경남 함안경찰서장 등을 거쳐 1953년 제주청 보안과 방호계장으로 퇴직했다.
문 전 서장은 4·3사건 당시 학살 위험에 빠진 주민들을 구출하고 계엄군에 항명해 총살 명령을 거부하는 등 민간인의 생명을 구했다. 그는 1948년 11월 제주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12월 군경의 토벌 작전이 시작되자, 좌익 혐의를 받던 모슬포 주민 100여 명을 자수시킨 뒤 방면해 목숨을 구했다. 6·25전쟁 당시에는 예비검속(좌익 가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미리 검거해 구속하는 조치) 대상을 총살하라는 계엄군의 명령이 내려오자 "부당함으로 불이행"한다며 명령서를 돌려보내 총 295명의 생명을 지켰다.
그러나 국민을 지키기 위해 그가 보여준 용기는 생전에 보상받지 못했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그랬듯 문 전 서장 또한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경찰에서 퇴직한 그는 배급소에서 쌀을 나눠주거나 극장에서 표를 팔며 생계를 이어갔고, 1966년 제주도립병원에서 7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후손이 없는 탓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는 것조차 난관이었다. 1963년부터 2012년까지 5회에 걸쳐 독립유공 심사가 이뤄졌지만, 남은 사료가 많지 않아 보훈당국에서 번번이 거절당했다. 경찰은 2018년 그를 '올해의 경찰영웅'으로 선정하고 서훈을 신청했지만 다시 한번 기각됐다.
이후 경찰은 그가 6·25전쟁 당시 경찰관으로 지리산전투사령부(빨치산 토벌부대)에서 근무했던 이력에 착안, 독립유공이 아닌 참전유공으로 변경해 서훈을 추진했다. 공동묘지에 안치된 그를 참전유공이라는 방식으로라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우라고 봤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국립제주호국원과 협의해 문 전 서장의 국립묘지 안장을 추진하는 등 경찰 영웅으로서 최고의 존경과 예우를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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