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콘텐츠 확산, 방문객 감소 여파
운영비 크게 줄어, 자구책에도 문 닫아
정보접근성 버팀목 "중추 역할 사라져"
"다른 점자도서관을 이용하셔야 될 거 같아요."
지난달 26일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서울점자도서관. 오전 시간이었지만 한 명뿐인 도서관 직원은 수시로 걸려오는 문의 전화에 쉴 틈이 없었다. 도서관 곳곳에는 쌓여 있는 짐들을 정리하기 위한 종이박스와 각종 서류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도서관이 이상하리만치 어수선한 건 곧 폐관하기 때문이다. 전화로 이용자들에게 폐관 날짜와 사유 등을 상세하게 안내하던 도서관 관계자는 "오래 운영하다 보니 아쉬워하는 분이 많은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31년 역사의 서울점자도서관이 문을 닫았다. 이용객 감소 탓이 크지만, 최근 몇 년간 지방보조금이 줄어 운영난이 가중된 점도 영향을 줬다. 다양한 행사로 시각장애인들의 정보접근권을 지킨 버팀목이 돼줬던 터라 경제논리에 의한 폐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코로나 때도 어떻게든 버텼는데..."
1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한시연)에 따르면, 서울점자도서관은 지난달 31일을 끝으로 운영을 중단했다. 설립 31년 만이다. 이곳은 사립인데도 실물 점자책 700여 권, 음성책 1만5,000여 권을 제공하며 시각장애인 기본권 보장에 앞장서왔다. 점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점맹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교실, 작가와의 만남, 음악회 행사 등도 꾸준히 열었다. 한시연 측은 "시각장애인용 온라인 콘텐츠가 늘고, 도서관 방문객이 감소한 영향이 컸다"고 폐관 배경을 설명했다.
지방보조금이 계속 삭감된 여파도 무시할 수 없다.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에선 점자도서관을 '장애인 지역사회 재활시설'로 분류한다. 그러나 시설 대부분이 지방이양사업이라 국고보조금이 따로 나오지 않는다. 그간 도서관이 서울시·노원구 보조금과 외부 후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엔 인건비 충당조차 쉽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한시연 감사보고서를 보면, 서울시가 도서관에 준 보조금은 2020년 7,410만 원에서 지난해 4,627만 원으로 줄었다. 지난해 3억2,000만 원이 든 도서관 운영비를 감안하면 금전적 손실이 막대하다. 도서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당시 임시폐관을 감행하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안간힘을 썼으나 폐관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시각장애인 '정보 허브' 명맥 이어야
이유가 어떻든 장애인 편의시설의 퇴출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우선 역사가 깃든 도서관 이름이 사라져 10여 곳에 불과한 서울 내 점자도서관이 또 하나 줄게 됐다. 수는 적다고 하나 하루 평균 2, 3명의 이용객은 다른 점자도서관을 찾아야 한다. 시각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새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만큼 감수해야 할 불편은 훨씬 더 크다.
사업 위축도 걱정된다. 도서관은 그간 점역사·교역사 교육프로그램 '훈맹정음'을 진행하며 매 기수 10명 정도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하지만 관련 사업의 이관 대상이 정해지지 않아 명맥이 끊길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점맹 비율이 높아 점역사·교역사 교육이 시급한 상황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시각장애인에게 점자사업은 정보접근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중추 역할을 해온 도서관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했다.
한시연은 일단 노원구 시각장애인복지관과 내년에 설립될 한국점자교육문화원에 폐관된 점자도서관 업무를 적절히 분배해 교육 결손을 최대한 막겠다는 계획이다. 단체 관계자는 "문을 여는 문화원이 업무를 더욱 효율화하고 역할을 확장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2020년 보조금은 시설지원금이 반영된 금액이라 높게 측정된 면이 있다"며 "시는 장애인도서관에 지속적으로 지원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올해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6억1,600만 원을 편성했다"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