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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텔의 힘

입력
2023.12.2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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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 17일 이필수(왼쪽)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의대생들이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의대증원 저지를 위한 제1회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의사 가운을 벗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7일 이필수(왼쪽)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의대생들이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의대증원 저지를 위한 제1회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의사 가운을 벗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하면서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가 '카르텔'이다. 카르텔은 정보의 왜곡으로 공정 경쟁을 훼손하는 만큼 어느 권력이나 엄정 대응을 강조하는데, 현 정부 들어 그 무게감은 훨씬 커졌다. 윤 대통령이 공개 자리에서 특정 집단을 '이권을 노린 카르텔'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사정기관은 척결의 대상으로 삼아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정부는 사정기관의 지침을 따르는 듯 일사불란하게 대응하는 방식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6월 "나눠 먹기식 R&D(연구개발)는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R&D 예산이 대폭 삭감됐고, 그보다 앞서 대학수학능력시험 킬러문항이 사교육 카르텔을 키웠다며 학원가를 상대로 대대적인 조사가 벌어졌다. 철근 누락 아파트로 문제가 된 건설업계는 물론 은행, 민주노총 화물연대, 시민단체까지 모두 이권 카르텔로 엮었다. 문제로 삼은 대상이 불명확하고 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이분법적 사고로 혼란이 일었지만, 검사 출신답게 법과 원칙, 사회 질서가 중요하다는 윤 대통령의 신념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권 카르텔 메시지는 특정 집단에는 전혀 효과 없는 얘기가 되고 있다. 사익을 노리고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이들에게는 어김없이 '엄정 대응'으로 경고해야 하지만, 두 집단만큼은 예외인 듯하다. 오히려 자신들의 힘을 더 키워가고 있다.

하나는 3년 만에 다시 '집단 진료 거부'를 거론하는 의사들, 바로 대한의사협회(의협)다.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을 반대하는 의협은 대정부 압박 수위를 노골적으로 높이고 있다. 정부를 굴복시킬 수 있다면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삼겠다는 말도 서슴없이 한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일방적으로 의대 증원을 추진하면 3년 전보다 더 강도 높은 투쟁을 하겠다"고 했는데, 이 말이 현실이 되면 3년 전보다 심각하게 누군가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을지도 모른다. 의협은 실제 코로나19 사태 때인 2020년 7, 8월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반발해 집단 진료 거부를 강행했다. 그 탓에 응급환자나 집중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빈 병상을 찾아 헤매는 일이 벌어졌다.

의협은 이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며 지난 17일 서울에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를 열었는데, 의대생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의사 가운을 벗어던지는 퍼포먼스까지 했다. 20대 학생들까지 대정부 투쟁 전면에 내세워서라도 의사 집단의 이익을 지켜내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검찰 카르텔'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심상치 않다. 검찰은 인간의 가장 큰 권리인 자유권을 옭아맬 수 있는 인신 구속에 대한 권한을 쥐고 있다. 가뜩이나 센 힘을 가진 검사들인데 현 정부에서 요직을 꿰차며 거대한 정치 세력으로 떠올랐다. 최근 윤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검찰의 상징인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자리를 꿰찬 게 검찰의 힘이 얼마나 막강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계 진출 즉시 여당 최고 실세가 될 수 있는 정치인이 누가 있을까. 그런데도 이권 카르텔 낙인은 두 집단을 비껴갔고, 그사이 이들은 보란 듯이 자신들의 강해진 힘을 과시하고 있다.

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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