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힘멜포르트 '크리스마스 우체국'
동심 위한 답장에 수십만 통 편지 몰려
아이들 크리스마스 소원은 "세계 평화"
"산타클로스에게. 크리스마스 우체국, 16798, 힘멜포르트, 독일."
매년 성탄절마다 대목을 맞는 독일의 한 마을 우체국이 어린이들에게 '소망을 담은 편지를 보내 달라'며 공개한 주소다. 실제 편지는 수십만 통씩 밀려든다. 비장의 무기는 단 하나, 산타클로스가 한 명 한 명 손수 보내 주는 답장이다.
"안녕, 나는 산타야" 동심에 답하자 수천 통 쏟아져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독일 동부 마을 힘멜포르트에서 '크리스마스 우체국'을 탄생시킨 '산타표 답장'은 39년 전 한 우체국 직원으로부터 시작됐다. 1984년 12월 힘멜포르트 우체국에서 일하던 코넬리아 마츠케(64)는 우편물 분류실에서 동베를린과 작센의 어린이들이 산타클로스에게 보낸 편지 두 통을 발견했다. "도저히 그 편지들을 버릴 수 없었다"는 마츠케는 산타를 대신해 답장을 썼다. 크리스마스의 신비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산타의 답장'은 금세 입소문을 탔다. 다음 해 답장할 편지가 75통으로 불어났다. 1990년엔 동독과 서독의 통일과 함께, 독일 전역에서 편지가 빗발쳤다. 성탄절 직전까지 하루 최대 2,000통이 밀려들었다.
'동심 수호' 작전에 독일 최대 우편기업 도이치포스트도 팔을 걷어붙였다. 도이치포스트는 1995년 보조 인력 2명을 둔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한 해 20명씩 '산타 도우미'를 고용한다. 아이들의 편지도 매년 30만 통가량으로 폭증했다. 독일뿐 아니라 중국, 폴란드, 체코 등 해외 59개국에서도 1만7,000통의 편지를 부친다. WP는 "미국 어린이들도 북극(의 산타에게 편지 보내는 것)을 포기하고 합세했다"고 전했다.
11월 중순부터 '산타 도우미'들은 어린이들의 편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느라 분주해진다. 모든 아이가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까지 답장을 받게끔 하는 게 목표다. 수십만 통씩 편지가 밀려드는 탓에 답장은 손글씨 대신 인쇄물로 바뀌었지만, 편지의 묘미를 살리려고 필기체로 출력한다. 게다가 봉투에 적는 주소만큼은 일일이 손으로 적는다.
올해 어린이들 염원은 "세계가 평화롭길"
어린이들의 바람엔 시대의 그늘이 깃들기도 한다. 올해 접수된 30만 통의 편지 속에 가장 많았던 소망은 '세계 평화'였다고 독일 슈피겔은 전했다. 안케 블렌 도이치포스트 대변인은 "예년보다 눈에 띄게 많은 어린이가 세계 평화를 염원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등 전쟁이 세계 곳곳에서 이어진 여파로 보인다. 코로나19가 창궐하던 2020, 2021년엔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고 싶어요"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겠어요" 등의 소망이 주를 이뤘다. 물론 장난감이나 최신 전자 기기를 갖고 싶다거나, 가족들의 건강을 바라거나,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는 고전적 소원도 여전히 많았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우체국'의 첫 삽을 뜬 마츠케는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은 멋진 일"이라며 기쁨을 드러냈다. 40년째 이어온 답장을 멈추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하며 이렇게 말했다. "모든 아이는 산타에게 답장을 받아야 해요. 그러지 못하면 '믿는 것'을 금방 멈출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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