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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크리스마스 데이트? 꿈도 못 꿔요"... '디지털 예약사회'에 지친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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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크리스마스 데이트? 꿈도 못 꿔요"... '디지털 예약사회'에 지친 어르신들

입력
2023.12.25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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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60대 데이트 따라가 봤더니]
앱 활용, 대기시간 2시간가량 차이
디지털 격차 심각... 삶의 질 저하로
갈등 커질 우려... "중간지점 찾아야"

23일 오후 60대 부부가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 앞에서 웨이팅을 하고 있다. 부부는 1시간을 기다리다 입장을 포기했다. 이서현 기자

23일 오후 60대 부부가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 앞에서 웨이팅을 하고 있다. 부부는 1시간을 기다리다 입장을 포기했다. 이서현 기자

"웨이팅(waiting·순번 대기)도 예약하라고요?"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 앞. 영하의 추위를 40분이나 견디며 입장을 기다리던 김모(62)씨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늦게 온 젊은 손님 8팀이 김씨보다 먼저 가게 안으로 들어간 걸 막 목격한 터였다. 남편 정모(62)씨는 '웨이팅 앱(애플리케이션)이 따로 있다'는 기자의 설명에 곧장 검색을 시작했지만 앱을 내려받는 데 실패했다. 검색 화면에 나타난 수많은 앱 가운데 뭘 골라야 할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같은 데이트했는데... 60대 vs 20대 결과는?

밥 한 번 먹으려 해도 예약하고 웨이팅을 걸어야 하는 시대다. 디지털 예약시스템은 시간 활용을 최적화하는 데 도움을 줘 콘서트, 영화관, 놀이공원 등 여가 문화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하지만 편리함이 가중될수록 그늘도 짙어진다. 정보화 시대 도래로 안 그래도 사회문제로 떠오른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디지털 격차)'는 최근 실생활에 접목한 기기활용 쓰임새가 계속 늘면서 중·장년층을 더욱 소외시키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22, 23일 서울 마포구 일대에서 60대 부부와 20대 커플의 데이트를 따라가 봤다. 결과는 예상대로다. 디지털기술 활용도에 따라 서비스의 질적 격차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두 집단은 '카페·영화관·사진관·음식점'이라는 같은 동선을 누볐지만 내용과 만족도는 극과 극이었다.

60대 부부, 20대 커플의 하루. 그래픽=박구원 기자

60대 부부, 20대 커플의 하루. 그래픽=박구원 기자

오후 1시 30분, 데이트를 시작하자마자 차이가 보였다. 20대 커플은 곧장 휴대폰 앱을 열더니 인근 카페에 웨이팅을 걸었다. 분주한 손놀림 10분 만에 카페 두 곳에서 대기순번 3, 4번을 받아냈다. 앱 검색부터 "입장 가능" 문자를 받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30분. 양모(22)씨는 "순번이 확정된 뒤에도 언제쯤 내 차례가 왔는지 수시로 확인이 가능해 대기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60대 부부는 결과적으로 맛집 탐방의 뜻을 접었다. 손님이 드문 디저트 카페에 들어갔지만 이미 7팀이 앱으로 웨이팅을 걸어둔 상태였다. 기왕 왔으니 기다려보자 결심하고 접수 키오스크 앞에 섰다. 그러나 키오스크에 휴대폰 번호, 인원수 등을 기입하는 데만 4분이 걸렸고 그사이 다른 앱 이용자들이 웨이팅을 가로채 대기순번이 12번으로 밀려났다. 부부는 매장 밖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다 추위에 지쳐 이용을 포기했다. 부부는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게 쉽지 않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대세 된 디지털 예약... "삶의 질 균형 보장해야"

23일 오후 60대 정모씨가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웨이팅 키오스크를 이용하고 있다. 이서현 기자

23일 오후 60대 정모씨가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웨이팅 키오스크를 이용하고 있다. 이서현 기자

이후 패턴도 비슷했다. 20대는 3분 만에 앱으로 예매를 마치고 영화 데이트를 즐겼다. 부부는 27분을 투자해 머리를 맞댄 끝에 예매에 성공했으나 영화 시작 시간을 훌쩍 넘긴 후였다. 사진관 데이트와 저녁식사까지 끝낸 커플이 귀가한 시간은 오후 8시 10분. 60대 부부는 식사를 걸렀는데도 오후 8시 40분에야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부부의 디지털기기 활용 시간(37분)은 20대 커플(15분)의 두 배가 넘었다. 결과는 고스란히 대기시간(42분, 138분)과 데이트의 질적 격차로 이어졌다.

미숙한 디지털기기 적응 능력은 서비스 혜택에도 차이를 낳는다. 가령 커플은 각종 할인을 받아 부부보다 9,000원을 덜 내고 영화를 봤다. 김씨는 "예약도 어려운데 할인혜택까지 어떻게 신경 쓰느냐"고 반문했다. 비용을 더 지불하고도 서비스 만족도는 크게 떨어지는 셈이다.

예약서비스 시장에서 중·장년층 소외 현상은 지표로도 확인되고 있다. 서울디지털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디지털 역량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55세 이상의 예매·예약 디지털 서비스 이용능력은 35점으로 나타났다. 전체 평균(60점)의 거의 반토막 수준이다. '최근 3개월간 디지털기기로 예매・예약서비스를 이용한 적 없다'는 응답도 41.4%나 됐다.

23일 오후 60대 정모씨(왼쪽 사진)와 22일 20대 양모씨가 서울 마포구의 한 영화관에서 키오스크를 이용하고 있다. 이서현 기자

23일 오후 60대 정모씨(왼쪽 사진)와 22일 20대 양모씨가 서울 마포구의 한 영화관에서 키오스크를 이용하고 있다. 이서현 기자

그렇다고 대세를 어찌할 순 없는 노릇이다. 한 식당 예약 앱의 누적 웨이팅 수(5월 기준)가 72만 건을 돌파하고, 도입 매장이 7,000곳을 넘어서는 등 예약서비스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반면 주요 웨이팅 앱 사용자의 50세 이상 비중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이처럼 놀이공원, 야구장, 콘서트 등 여가생활이 죄다 디지털 예약제에 기반하다 보니 중·장년층 사이에선 "그저 포기하는 게 일상"이라는 자조마저 나온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간영역뿐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디지털기기를 활용한 예약서비스가 주를 이루고 있다"며 "'디지털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만큼 균형적인 삶의 질을 보장하는 차원에서라도 어른 세대를 배려한 시스템 마련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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