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대통령실을 소관부처로 관할하는 운영위원회가 '식물 상임위'로 전락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정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운영위를 열어 대통령실의 잘잘못을 따져 묻겠다고 벼르는 반면, 국민의힘은 회의 자체를 틀어막으며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대통령실의 국회 업무보고는 8월 결산국회 이후 중단됐다. 운영위의 법안 처리율 또한 전체 상임위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기능이 무력화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22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가 2주 만에 열렸지만 여당의 보이콧으로 11분 만에 파행됐다. 민주당이 개회 요구서를 제출해 단독 개최하자 국민의힘은 윤재옥 위원장과 이양수 간사를 제외하고 모두 불참했다. 직전 열렸던 6일 전체회의도 민주당의 단독 개최로 열렸다가 여당의 불참으로 야당 의원들의 의사진행발언만 듣고는 18분 만에 끝났다.
민주당은 이날 운영위에서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해병대 외압 의혹 등 국정 현안을 다루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천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을 깎아내리는 데 몰두했다. 박주민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한 전 장관을 향해 "말로만 혁신하지 말고 진짜 혁신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며 "그에 대한 하나의 명백한 증거로 운영위를 정상화시켜달라"고 날을 세웠다. 박상혁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집권당의 선거 문제를 대통령실이 개입한 문제가 국정 농단의 중요한 근거가 됐다"며 한 전 장관의 비대위원장 추대에 절차적 흠결이 있다고 주장했다.
운영위가 야당의 일방적인 발언대로 전락하게 된 것은 여야의 셈법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야당은 매 사안마다 운영위를 소환해 정부의 실정을 공격해야 지지층 결집에 유리하다. 이와 달리 여당은 대통령실을 엄호하기 위해 회의 자체를 틀어막는 것이 최선이다.
그 결과 윤석열 정부 들어 운영위 전체회의는 20회에 그쳤다. 이 중 야당 단독 개최로 인한 파행(4번)과 간사 선출, 국정감사 증인 채택 같은 필수적인 운영상 문제로 열린 회의(4번)를 제외하면 사실상 12회에 불과하다. 특히 국정 운영 방향을 설명하는 대통령실의 업무보고는 고작 4회만 진행됐다. 자연히 법안 처리율은 17.5%로 전체 17개 상임위 중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운영위는 대통령실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탓에 역대 정부에서도 회의 개최 여부 자체가 정쟁의 대상으로 부각됐다. 회의를 열라고 압박하는 민주당도 문재인 정부 당시 집권 여당일 때는 운영위 단독 개회를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맞섰다. 자유한국당이 6년 전 임종석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중동 특사 파견 배경을 따져 묻기 위해 운영위를 단독 개회하자 민주당은 회의를 보이콧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가 서로 공수가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 신사협정을 맺지 않는 한 운영위의 정상운영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여야의 인식 전환이 선결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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