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부터 다섯 시즌 참여 '렌트' "이번이 마지막 엔젤"
"엔젤은 연륜·여유보다 사랑스러움 필요"
"다음 시즌엔 연출로 함께하고 싶어"
"엔젤은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인물 자체가 사랑스럽고 밝은 에너지를 지닌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무대 위에서 연륜과 여유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제가 좀 더 나이가 들면 엔젤의 상징인 사랑스러움보다 노련미로 (무대를) 끌고 갈 것 같아요."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만난 뮤지컬 배우 김호영(40)은 TV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모습 그대로 활력이 넘쳤지만 답변만큼은 철저한 자기 객관화가 바탕이었다. 김호영은 21년간 연기해 온 뮤지컬 '렌트'의 엔젤을 내년 2월 25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공연을 끝으로 더 이상 맡지 않기로 했다. 이 같은 결정의 이유를 묻자 그는 "피부 나이로만 보면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농담으로 운을 떼면서도 금세 진지한 모습이 됐다.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을 모티프로 한 1996년 브로드웨이 초연 뮤지컬 '렌트'는 꿈을 찾아 방황하는 뉴욕의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 이야기다. 그중 엔젤은 드래그퀸으로, 단발머리에 치마를 입고 무대에 등장한다. 김호영은 2002년 오디션을 통해 한국 라이선스 공연 '렌트'의 엔젤로 뮤지컬에 데뷔했고 이번이 엔젤을 연기하는 다섯 번째 시즌이다. 그야말로 엔젤은 그의 뮤지컬 인생을 관통하는 역할이지만 김호영은 틀에 박힌 연기의 위험성을 걱정했다. "저도 모르게 예전 무대의 기억을 떠올리고 함께하는 배우들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틀에 갇히게 되는 게 아닌가 싶은 순간이 있어요. 역시 엔젤을 연기한 배우 출신인 앤디 세뇨르 협력 연출가처럼 다음 공연부터는 연출이나 액팅 코치, 드라마투르기 등 프로덕션 스태프로 참여하고 싶어요."
김호영은 지난해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다른 활력을 과시하며 했던 말인 "끌어올려"가 유행어가 되면서 최근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부쩍 잦아졌다. 사실 김호영의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밝은 에너지는 뮤지컬계에선 일찌감치 잘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김호영이 생각하는 자신의 매력과 그가 연기하는 엔젤의 공통된 매력은 "누구든 쉽게 경계심을 풀게 하고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면"이다. 대학교 때부터 '호이(hoy)'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그는 이를 "호이스럽다", "호이매직"이라고 표현했다.
김호영은 그렇게 "호이스러움"을 앞세워 TV 예능 프로그램뿐 아니라 홈쇼핑 채널에서도 맹활약 중이고, 트로트 음반과 에세이도 냈다. 그는 자신이 하나의 브랜드가 된 현실을 고마워하면서도 "연기에는 항상 목마르다"고 말했다. 그는 '렌트'의 엔젤을 비롯해 '라카지', '프리실라' 등에서 여장 남자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킹키부츠'의 찰리 같은 도회적 남성 캐릭터도 훌륭히 소화했다. 그런데도 평소의 튀는 모습 때문인지 영화나 TV 드라마 오디션을 분위기 좋게 마무리하고도 출연까지는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잘하는 것과 해야 할 것 중 선택해야 하는 교차로에 서 있다"면서 "그동안 온 국민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왔다면 이제는 에너지가 크기만 하지 않고 차분한 면도 있다는 말을 듣는, 에너지를 잘 다루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뭘 하지 않아도 눈에 확 띄는 게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단점도 되니 애석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당장 잘할 수 있는 걸 하려고요. 영화에 출연하고 싶으면 홈쇼핑 완판남으로 등극해 영화 직접 제작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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