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만에 공공기관 민원서비스 재개
장애 없었지만, 시민 "주말 내내 불안"
"원인규명 못 하다니" 정부 무능 성토
“부동산 매매 계약이 어그러질 뻔했어요.”
20일 이른 아침 서울 용산구 남영동주민센터를 찾은 남윤호씨는 ‘1번’ 번호표를 손에 쥔 채 초조한 표정으로 벽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7일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로 두 번이나 헛걸음을 하고, 이날이 3번째 방문이다. 드디어 오전 9시 주민센터 문이 열리자, 그는 10분도 안 돼 인감증명서를 손에 쥐었다. 남씨는 “오전 10시 매수인에게서 잔금을 받기로 미리 약속돼 있었다”며 “주민등록초본은 주말 정상화된 정부24(민원서비스 통합 포털)를 통해 온라인으로 받아 놨지만 방문 수령이 원칙인 서류를 떼지 못해 내내 불안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영선씨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사업자를 신청할 때 제출해야 하는 서류 때문에 경기 부천시 자택에서 임대건물이 있는 남영동까지 먼 길을 연거푸 오가야 했다. 이씨는 “나처럼 나이 든 사람은 온라인 민원서비스를 이용하기가 힘든데 주민센터가 멈춰 버리면 어떻게 하나. 기본도 못하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다행히 행정전산망이 복구돼 공공기관 민원 업무 처리에는 큰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주민센터 직원들은 주말에도 나와 시스템을 점검했고, 이날도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거듭 확인했다. 서울 한 자치구 관계자는 “17일 접수된 서류는 소급해 행정 처리를 마쳤다”면서도 “혹시 모를 민원인 피해에 대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기준 정부24 발급·처리 건수는 26만여 건, 공무원용 민원 처리 시스템 ‘시도·새올행정시스템’ 접속 건수는 53만여 건으로 집계됐다. 전산망 먹통 사태 전과 비슷한 수준이다. 각 자치단체 민원실과 읍면동 주민센터 민원 업무도 원활하게 이뤄졌다. 무인민원발급기는 정상 작동됐고, 시스템 접속이 불안하거나 처리 속도 저하 같은 ‘오류’도 생기지 않았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주요 시스템과 민원업무 운영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불안감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다. 일부 공공기관에선 이른바 ‘오픈런’ 사태가 빚어졌다. 이미 늦어버린 민원을 한시라도 빨리 처리하기 위해, 또 주민센터에 업무가 쌓여 행정 처리가 더 늦어질까 봐 염려한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린 탓이다. 반차 휴가를 내고 방문한 직장인도 이날 아침 여럿 눈에 띄었다.
관악구 신림동주민센터를 찾은 공사장 현장소장 정길영씨는 “지난주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해 직원들 월급이 밀렸다”며 “주말 동안 전전긍긍하다가 아침 댓바람부터 왔다”고 했다. 법무사 사무소 직원인 최찬혁씨도 “매일 고객들 주민등록초본을 10장 정도 떼야 하는데 지난 금요일 하루를 통째로 날렸고, 불만 대응도 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시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부의 무능을 성토했다. 중구 소공동주민센터에서 만난 김모씨는 “주말이 끼여 있기에 망정이지 만약 월요일이나 주중에 행정마비 사태가 발생했더라면 어쩔 뻔했나”라며 “아직 제대로 된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고 꼬집었다.
행안부는 이날 오전 7시부터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대응 상황실’ 가동에 들어갔다. 21일에는 민간 전문가와 정부, 지자체, 관계기관 등이 참여하는 ‘지방행정전산서비스 개편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정밀 분석할 예정이다. 행정전산망 시스템 전반도 다시 검토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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