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 투병 중 케냐로 전지훈련 떠나
훈련비 규정 탓에 귀국 못 하고 병 키워
도쿄 올림픽 직전 입국해 1달 만에 사망
법원 "올림픽 지도와 사망 인과성 인정"
케냐 출신 귀화 마라토너 오주한(35)의 '아버지'로 불렸던 고(故) 오창석 전 마라톤 국가대표 감독을 체육 유공자로 인정해야 마땅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오 전 감독은 혈액암 투병 중에도 오주한의 훈련을 위해 케냐로 떠났다가 현지에서 병을 키웠고,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 사망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최수진)는 오 전 감독의 아내 A씨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를 상대로 "체육 유공자로 지정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10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오 전 감독은 오주한을 발굴하고 육성한 은인으로, 오주한이 그의 성까지 따며 '아버지'라고 불렀던 지도자다. 2020년 2월 그는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오주한을 지도하기 위해, 마라톤 전지훈련의 성지 케냐로 떠났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박희정 변호사는 "오 전 감독은 2, 3개월마다 경과 관찰이 필요한 혈액암으로 투병 중이었지만, 같은 해 7월 올림픽(코로나 때문에 1년 지연됨) 이후 한국에 돌아와 치료받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출국을 하셨던 것 같다"고 전했다.
발목을 잡은 건 코로나였다. 올림픽이 1년 미뤄졌고, 케냐에 의료시설이 충분하지 않아 오 전 감독은 국내로 돌아와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 산하 육상연맹 측은 '국외 훈련은 선수와 지도자 동행을 원칙으로 한다'는 대한체육회 지침을 내세워 오 전 감독이 혼자 귀국하면 급여뿐 아니라 오주한에 대한 훈련비를 지원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오 전 감독은 올림픽 시작 때까지 케냐에 있으려고 했지만 2021년 4월 비자가 만료돼 한국으로 들어왔다.
오 전 감독은 입국 한 달 만에 사망했다. 방치한 혈액암이 악화해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아내 A씨는 "오 전 감독을 체육 유공자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문체부는 "오 전 감독은 감독이 되기 전 얻은 질병 때문에 사망한 것"이라며 거절했다. 그래서 유족은 지난해 1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오 전 감독이 올림픽을 위해 지도한 행위와 혈액암 악화로 인한 사망 사이에는 인과성이 인정된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이 전문가에게 문의했더니 '오 전 감독이 2020년 8월(국내 복귀 문의 시점) 혈액암 진행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고, 전신상태가 좋은 상황에서 항암 화학 요법을 받았다면 치료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는 감정 소견이 도착했다. 그래서 법원은 "오 전 감독이 훈련비 지원 문제 등의 이유로 귀국을 못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친 것"이라고 판단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A씨는 월 120만 원의 연금을 받게 된다.
박희정 변호사는 "감독의 직무수행과 사망 간의 인과관계를 폭넓게 해석한 판결"이라며 "예외 없이 감독·선수 지원 중단을 결정하려는 대한체육회의 일방적인 행정이 계속되면 똑같은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훈련 계획 변경이 있을 때 사전 협의를 거치면 훈련비 지급이 가능한 걸로 해석하고 있다"며 "오 전 감독님과 관련해서 유연하게 적용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따져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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