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 85% ‘현 제도 괜찮다’
‘유연 대처 어렵다’ 응답도 33% 불과
정부 “주 52시간제 유지” 원안 포기 선언
선별 적용 방침 속 구체안은 노사정 대화로
윤석열 정부가 이른바 ‘주69시간 노동’ 논란을 빚은 근로시간 개편안 원안 추진을 포기했다. 특정 업종·직종을 선별해 근로시간 개편을 적용하겠다면서, 보다 구체적 방안 및 일정은 노사정 대화를 통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현행 주 52시간 근로제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상당하고 특히 사업주 불만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자 '핀셋 개편'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용노동부는 13일 국민ㆍ근로자ㆍ사업주(기업인) 총 6,030명을 대상으로 한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연장 근로 단위시간 확대’에 동의한 의견은 국민 46.4%, 근로자 41.4%, 사업주 38.2%로 나타났다. 국민 10명 중 4명가량이 근로시간 개편에 동의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근로시간 규정에 불만이 큰 것도 아니었다. 사업주 가운데 ‘현행 주 52시간제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4.5%에 그쳤고, 나머지 85.5%는 애로사항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현행 근로시간 제도에서는 갑작스러운 업무량 증가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항목에 그렇다고 답한 사업주도 33%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주 52시간제 시행 이래 '장시간 근로가 감소했다' '업무시간 예측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긍정 평가하는 응답률은 40%대 중후반을 기록했다.
정부는 현행 주 52시간제가 ‘기업 혁신과 개인 행복추구에 방해가 된다’며 개편을 밀어붙여왔다. 경영계도 ‘현행 제도가 지나치게 경직돼 기업 활동이 어렵다’며 이를 지지해왔다. 고용부는 전문가 자문기구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 논의 등을 거쳐 지난 근로시간 개편안 원안을 발표했지만, 이는 장시간 근로 문제 등 반발 여론에 부딪혔다. 결국 대통령이 나서서 여론 수렴을 주문했고, 고용부는 이에 따라 설문조사를 거쳐 제도를 개편하기로 했는데 정부 의도와는 거리가 있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포괄임금 악용 관행도 드러났다. ‘근로시간으로 애로사항이 생길 때 대응방법’에 대한 질문에 사업주 40%가 ‘포괄임금을 활용한다’고 답했다. 이어 ‘추가 인력 채용’ 36.6% ‘나중에 적발되더라도 일단 근로시간 법·규정은 무시한다’ 17.3%, ‘퇴근 처리 후 업무 수행 등 출퇴근 시간을 임의로 처리한다’ 5.8% 등으로 나타났다. 연장근무를 하더라도 제대로 된 근로 대가를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정부는 사실상 원안 포기를 선언했다. 이성희 고용부 차관은 “설문조사 결과를 전폭 수용하며 주 52시간을 유지하면서 일부 업종ㆍ직종에 한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근로시간 개편이 필요한 업종ㆍ직종은 “노사정 대화를 통해 근로시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만 했다. 현행 노사정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한국노총 불참으로 가동을 멈춘 상태여서, 대안 논의를 위해서는 경사노위 복원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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