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도피교사 혐의 1·2심에선 유죄
대법원 "통상적 도피 행위에 해당"
'계곡 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 확정 판결을 받은 이은해가 도주 과정에서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더라도 '범인도피교사'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범죄자가 자기 자신의 도피를 부탁한 것은 통상적인 방어권 행사 범위 안에 있다고 봐야 한다는 취지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기소된 이은해와 공범 조현수에게 각각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지난달 26일 사건을 인천지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도피교사 행위로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해를 초래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심 판결엔 범인도피교사죄의 성립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경기 가평군에서 발생한 계곡 살인 사건으로 수사를 받게 된 이씨와 조씨는 2021년 12월 검찰의 2차 조사를 앞두고 도주했고, 이듬해 4월 고양시의 오피스텔에서 체포됐다. 이들은 그동안 친구 등에게 은신처와 자금 등을 지원해달라고 부탁해 도피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는데, 이에 가담한 지인들은 이미 범인도피죄로 유죄를 확정받았다.
검찰은 이씨와 조씨가 지인들에게 범죄를 시켰다고 보아 살인죄 외에 범인도피교사 혐의를 추가로 적용했다. 판례상 범인 스스로 도피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 아니지만, 타인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하는 등 방어권을 남용한 경우에는 범인도피교사죄로 인정될 수 있다. 1·2심은 검찰 주장을 받아들여 "피고인들은 지인과 수사상황을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등 단순한 도피의 부탁을 넘어선 관계였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증거가 발견된 시기에 도피했다는 점, 도피 생활이 120일간 지속됐다는 것, 수사 상황을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한 것, 일부 물건을 은폐하려고 한 것 등은 통상적인 도피 범주에 포함된다"며 "(도피를 도운) 지인들은 친분 때문에 도와준 것으로 보이고 조직적인 범죄단체를 갖추고 있다거나 도피를 위한 인적·물적 시설을 미리 구비한 것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결국 "(피고인들이) 수사기관을 적극적으로 속이거나 범인의 발견·체포를 곤란 내지 불가능하도록 적극적 행위를 한 것은 아니었다"며 범인도피교사죄를 물을 수 없다고 봤다.
앞서 이씨는 사망보험금을 목적으로 내연 관계인 조씨와 공모해 2019년 남편 윤모씨를 계곡에서 뛰어내리도록 유도해 죽게 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1·2심과 대법원 모두 심리적 지배(가스라이팅)에 의한 직접 살인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으나, 적절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아 윤씨를 죽게 내버려둔 점과 앞서 복어 독 등을 이용해 윤씨를 살해하려 했던 살인미수 혐의 등을 인정했다. 이씨와 조씨는 9월 대법원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30년을 확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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