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기준, 유럽 주요국 사례와 비교해보니]
"원청업체라면 교섭 나서야" 개정안 취지 인정
노동조건 무관한 정치파업, 권리분쟁에는 반대
손해배상 청구 가능하지만 실제 사례 '거의 없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을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가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다. 경영계는 “파업 상시화로 산업현장이 초토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노동계는 “불평등한 노동환경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라고 두둔한다. 법조·노동 전문가도 법안의 정당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유럽 주요국은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풀어왔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국제 노동 기준은 기업과 노동자의 이익이 충돌할 때 노동자 입장에 서 왔다. 국내 노조법 개정 취지가 국제 노동기준과 부합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중립적 기구’인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이 지난해 펴낸 ‘결사의 자유에 관한 국제노동기구 기본협약 비준과 노동법의 쟁점’ 보고서와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해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유럽 주요국 사례를 노조법 개정안의 주요 쟁점과 비교한 결과다. 우리나라는 2021년 ILO 결사의 자유 기본협약을 비준했다.
원청업체 교섭 나서야? 국제기준 '그렇다'
노조법 개정안의 핵심은 사용자(사업주) 범위의 확대다. 지금까지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만 사업주였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ㆍ결정할 수 있는 자’가 사업주다. 경영계는 “하청 노조가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ILO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돼야’ 한다.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일관되게 “노동조합과 고용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자 사이의 단체교섭은 항상 가능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고용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사업주’라는 조건은 노조법 개정 방향과 부합한다. 실제로 하청 노동자를 부리는 원청업체라면 응당 그에 맞는 책임을 지는 게 국제기준이라는 뜻이다.
정치파업ㆍ권리분쟁? '원칙적 반대'
노조법 개정안은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도 담았다. 현행 노조법은 임금ㆍ근로시간ㆍ해고 등 근로조건(이익분쟁)에 따른 노동쟁의만 허용한다. 정리해고나 민영화 반대 파업은 이익분쟁이 아니어서 불법이다. 개정안은 사용자의 부당 노동행위, 해고자 복직, 단체협약 불이행 등 ‘권리분쟁’까지 쟁의행위 대상으로 허용한다. 정부가 “정치파업까지 가능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ILO가 제시하는 기준은 쟁의 명분과 노동 조건의 상관성이다. 노동 조건과 무관한 정치파업, 법원 판단이 필요한 권리분쟁 파업은 원칙적으로 보호 대상이 아니다. ILO는 다만 ‘노동자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면 노조도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면 경영사항이더라도 쟁의행위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유럽 주요국 ‘손해배상 청구 사실상 없어’
노조법 개정안은 사업주가 노조에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대상자의 ‘책임’을 구분해 액수를 특정하도록 하고 있다.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손해배상액 전부를 함께 부담(부진정연대책임)하지 않고 손해 발생에 영향을 미친 만큼만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경영계는 “수십, 수백 파업 참가자 중에 누가 얼마만큼의 손해액을 발생시켰는지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손해배상 청구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유럽 주요 국가는 조금씩 다른 입장을 취한다. 독일ㆍ프랑스 등에서는 노조와 노조원 모두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노조원의 경우 폭력, 파괴, 감금 등의 행위가 있을 때 가능하다. 영국에서는 노조에만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데, 상한선을 20만 파운드(약 3억 원) 수준으로 한정했다. 다만 이들 규정은 모두 명목상 규정에 가깝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영국ㆍ독일ㆍ프랑스 등 주요국에서는 사업주가 노조나 근로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이 사실상 없다”고 했다. 폭력이 수반되는 파업 자체가 드물고, 기업도 가혹한 손해배상 청구는 피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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