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옥시 등에 청구한 손배소
대법원 '위자료 500만원' 확정판결
하급심 유사소송에도 영향 줄 듯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가 피해자에게 정신적 손해배상금(위자료)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번째 확정 판결이 나왔다. 8년 만에 결론이 난 이번 소송은 하급심에서 진행되는 유사 소송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확정 판결에 따른 추가 소송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모씨가 제조·판매사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와 납품업체 한빛화학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들은 공동으로 김씨에게 위자료 5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을 9일 확정했다.
김씨는 2007년 11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가 간질성 폐 질환 등 질병을 앓게 됐다. 하지만 당시 질병관리본부(질본)는 2014년 3월 "김씨의 질병은 가습기 살균제 노출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다른 원인을 고려할 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질환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질본은 당시 피해 등급을 △거의 확실함(1등급) △가능성 높음(2등급) △가능성 낮음(3등급) △가능성 거의 없음(4등급) △판단 불가능으로 분류했는데, 김씨는 3등급을 받았다.
김씨는 2015년 2월 옥시와 한빛화학을 상대로 2,000만 원을 요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 회사들이 호흡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야기할 수 있는 위험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성분을 넣었을 뿐만 아니라, 살균제 용기에 '인체에 안전하다'는 취지의 문구를 표시해 소비자들을 속였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는데도 소액사건(청구금액이 3,000만 원 이하인 사건)이라 판결 이유를 적지 않자, 김씨 측은 항소심에서 청구금액을 3,000만 원으로 올렸다.
항소심 법원은 2019년 9월 김씨 손을 들어줬다. 옥시 전 임원 등이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인명 피해와 관련해 유죄 확정 판결 등을 받은 사실, 김씨의 병원 소견서 등을 통해 판단해 볼 때 살균제에 PHMG 성분을 사용한 것 자체가 설계상 결함이라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피고들은 김씨의 손해가 가습기 살균제의 하자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 것임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 회사 측이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봤다. 재판부는 "사측은 PHMG가 흡입독성 여부에 대해 안전하다고 판단받지 않은 물질인데도 인체에 안전하다는 취지의 문구를 표기했다"고 꼬집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이번 판결은 하급심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른 가습기 살균제 소송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위자료와 더불어 치료비 등 재산적 손해까지 배상받을 가능성도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한 국가배상 소송도 이번 판결과 유사한 쟁점이 있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다만 2017년에 제정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법으로 보상을 받았다면 치료비 등이 배상금에서 공제될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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