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家, 이건희 유지 따라 3,000억 후원
소아암·희소질환 표준치료법 개발 힘써
다섯 살 정우는 '당원병'을 앓고 있다. 체내에서 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나오지 않는 희소질환이다. 음식을 섭취해도 에너지원으로 쓸 수 없고 장기가 망가지기 쉬워 늘 긴장해야 한다. 정우의 팔과 발도 파랗게 멍들어 있다. 저혈당 쇼크가 오면 위험하니 적정 혈당을 유지하기 위해 피를 자주 뽑기 때문이다.
힘든 투병 생활을 하던 정우와 가족이 최근 희망의 빛을 봤다. 서울대병원의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에서 손쉽게 혈당을 관리하고 생활 리듬을 확인할 수 있는 연속혈당기를 지원받은 것. 정우는 또 자신처럼 아픈 아이들이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표준치료법' 개발을 위한 데이터를 제공하며 '데이터 기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 남긴 '기부 씨앗'이 소아암·희소질환자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선 이런 뜻을 되새기는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 심포지엄'이 열렸다.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은 2021년 5월 이 선대회장 유족이 3,000억 원을 기부하면서 발족됐다. 소아 질환은 성인에 비해 종류가 다양한데 환자 수는 적다. 사례를 모으기 어려우니 표준치료법을 만들기 힘들고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어 환자와 가족의 부담이 크다. 평소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이라고 강조한 이 선대회장의 유지를 받든 삼성가(家)는 암과 희소질환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를 돕기로 했다. 이 선대회장은 2010년 5월 사장단 회의에서도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기업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치료비 지원이 아닌 문제 해결형 연구 프로젝트로 희소질환 극복의 토대를 다지기로 했고 현재까지 분야별 소아암 48건, 소아희소질환 19건, 공동연구 109건 총 176건의 과제를 뽑아 지원했다.
특히 '전국 권역 협력 네트워크'에서 모은 데이터를 누구나 진단 및 치료에 활용하게 하는 방식으로 전국의 어린이와 의료진을 폭넓게 돕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렇게 되면 수도권 의료 쏠림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여지가 있다는 것.
김한석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장(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이 사업은 전국의 연구자와 환자에게 큰 희망"이라며 "전국 권역 기관과 의료진의 참여를 이끌어내 선순환 구조가 마련되면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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