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경북 칠곡 원도심축제서 랩 경연
'보람할매연극단' vs '수니와칠공주'
'나 어릴 적 왜관' 주제로 프리스타일
“헤이 요! 소도 팔고 닭도 팔던 왜관시장, 시장해도 돈 없어서 못 사 먹던 시절~.”
4일 경북 칠곡군 원도심에 범상치 않아 보이는 두 무리의 할머니들이 나타났다. 한쪽은 헐렁한 티셔츠와 바지, 벙거지 모자에 치렁치렁한 목걸이를, 다른 무리도 회색 티셔츠에 스냅백 스타일 모자, 검정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다 얼굴에 핀 주름살과 어울리지 않는 옷 차림의 이들이 다소 엉성하지만 라임을 맞춘 랩을 시작하자, 주변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쏟아졌다.
국내 처음으로 할머니 래퍼들의 그룹 배틀(경연)이 펼쳐졌다. 칠곡군에서 열린 '쩜오골목축제'에서 특별행사로 할매래퍼그룹인 '보람할매연극단'과 '수니와칠공주' 배틀대회를 연 것이다. 두 그룹 모두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뒤늦게 한글을 깨치고 랩에 도전한 8인조 할머니 래퍼 그룹이다. 심사위원은 김재욱 칠곡군수와 홍보대사로 위촉된 슬리피가 맡았다.
이날 대회에서 두 할매래퍼그룹은 '나 어릴 적 왜관'이라는 주제로 프리스타일 랩 대결을 펼쳤다. 할머니들은 축제장을 찾은 관람객에게 나이를 잊은 퍼포먼스로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슬리피와 김 군수는 우열을 가리지 못해 무승부로 판정했다.
슬리피가 홍보대사와 심사를 맡게 된 것은 칠곡 할머니들에게 랩을 지도하면서 맺은 인연 때문이다. 김 군수도 이러한 사연을 접한 후 정상급 연예인의 친숙한 이미지를 통해 칠곡할매래퍼를 알리기 위해 홍보대사를 제안했다.
이날 직접 랩 시범까지 보인 슬리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받았던 모자를 김 군수에게 전달하며 할머니를 응원했다. 슬리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섰던 예전의 제 모습을, 칠곡 할머니들에게서 볼 수 있었다"며 "할머니들의 삶과 인생이 담긴 랩이 많은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김 군수는 "할머니가 랩을 하시는 경우도 흔치 않지만, 그룹배틀은 유일하다"며 "나이 아흔이 넘어 랩을 하는 어르신처럼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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