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소음에 현장 경찰관 귀 건강 심각
청력 다쳐도 공상 인정률은 29% 그쳐
바뀐 소음 규제도 처벌 약해 효과 미미
2018년 4월 지방경찰청 경비부장 A씨는 갑자기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어지러움까지 동반돼 곧장 병원을 찾은 결과, '돌발성 난청' 진단이 나왔다. 경찰 생활 30년 중 절반 넘게 경비업무에 종사했던 터라 집회 소음에는 단련됐다고 자부했지만 후유증은 계속됐다. A씨는 결국 8개월 뒤 퇴직했다.
'소음 공해'는 예나 지금이나 집회·시위 현장의 최대 골칫거리다. 보행자는 잠깐의 불편만 감수하면 되지만, 집회 내내 돌발 상황을 주시해야 하는 경찰관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최근엔 대형스피커 여러 개를 연결해 설치한, 이른바 '플라잉 스피커'까지 등장해 현장 경찰관들의 귀를 더욱 괴롭힌다. 청력 손상을 유발하는 환경에 노출돼 있어도, 예방 및 보상책마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치안 현장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28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태평로 4차선 도로에서 열린 시국집회 현장. 무대 양쪽과 트럭에 설치된 대형스피커에서 쉴 새 없이 굉음이 터져 나왔다. 3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양손에 무전기를 든 경찰관이 서 있었다. 경찰이 측정한 이날 집회의 등가소음은 법이 정한 기준(10분간 평균 소음 65㏈)을 초과했다. 서울 일선경찰서의 한 경비과장은 "지휘관이라 집회 내내 현장을 지켜야 하는데, 계속되는 스피커 진동 탓에 온몸이 주먹으로 맞는 듯 울리고 귀가 먹먹하다"고 말했다.
보호 장비로 귀마개가 지급은 된다. 하지만 귀를 찌르는듯한 소음을 막기엔 역부족인 데다, 항상 무전기로 소통해야 해 착용하지 않을 때가 많다. 매주 시위 현장에 나가는 서울의 한 경찰서 소속 경위는 "무전을 최고 음량으로 키워도 시끄러워 내용을 숙지하지 못한다"며 "수신호로 의사를 전달하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최근 청력검진에서 손상 직전 진단을 받았다.
이들을 더 서럽게 하는 건 청력 이상이 생겨도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힘든 탓이다. 실제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이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올 6월까지 경찰공무원이 이명, 난청 등 안·이비인후 질환으로 공무상 요양을 청구한 125건 중 업무상 연관성이 인정돼 재해로 승인된 건수는 36건(28.8%)에 그쳤다. A씨 역시 공무원연금공단에 신청한 공무상 요양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3년간 소송을 거쳐 겨우 취소 판결을 받아냈다.
정부도 소음 공해의 심각성을 알고는 있다. 이달 17일부터 적용된 집회·시위 소음 기준은 소음 측정시간을 기존 10분에서 5분으로 단축하고, 최고소음 위반 기준도 1시간 내 '3회 초과'에서 '2회 초과'로 엄격하게 측정하게 했다. 그러나 위반해도 벌금이 많아야 50만 원이 고작이다. 여기에 2회 초과 기준을 비껴가는 '꼼수 집회' 행태도 여전해 실효성을 지적하는 비판이 적지 않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확성기 사용 중지 명령 등 제재 수단은 있지만, 물리적 충돌을 우려해 가급적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방책도 아예 없다시피 하다. 경찰청이 지난해 3월부터 이명‧난청이 의심되는 경찰관을 상대로 실시하는 특화 진료는 어디까지나 사후 조치일 뿐이다. 황찬호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회장은 "돌발성 난청 증상은 한 달 안에 치료를 받지 않으면 회복이 어렵다"며 "경찰은 청력 손상에 가장 취약한 직군인 만큼 조기검진 등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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