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광장~북측 순환로~국립극장 왕복 6㎞
서울 사회복지단체 관계자 등 1,500명 참가
“오르막길에선 약간 숨차지만, 살랑거리는 가을바람을 쐬면서 걸으니 너무 좋아요.”
26일 서울 중구 남산 일대에서 열린 제488회 한국일보 거북이마라톤 ‘서울사회복지걷기대회’에 참가한 시각장애인 허문순씨가 생긋 웃으며 남산 둘레길로 경쾌하게 걸음을 옮겼다. 평소 러닝머신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에 걷기만큼은 자신이 있단다. 문순씨와 팔짱 끼고 함께 걷던 사회복지사 노지연씨가 “헉헉” 숨을 고르며 장난스럽게 울상을 지었다. “제가 길을 안내해 드려야 하는데, 도리어 지금 끌려 가고 있어요. 좀 쉬자고 해도, 꼭 완주하고 싶다면서 앞장서 가시네요.” 두 사람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기어이 완주에 성공했다.
코로나19 대유행 탓에 2019년 이후 중단됐던 거북이마라톤이 4년 만에 재개됐다. 올해 행사는 한국일보와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가 공동 주최했다. 그동안 몸이 근질근질했을 참가자 1,500여 명은 오랜만에 남산을 걸으며 한껏 들떴다. 문순씨와 지연씨가 소속된 노원구 상계동 시각장애인거주시설 ‘대린원’ 식구들도 매년 거르지 않는 단골 참가자라고 한다. 참가자 대다수가 백범광장을 출발해 북측 순환로를 따라 국립극장까지 걸은 뒤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왕복 6㎞ 코스에 익숙했다.
개회식에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격려사에서 가장 먼저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를 비롯한 여러 사회복지단체 관계자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그는 “제가 아무리 약자와의 동행을 외쳐도 이 자리에 함께 계신 여러분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잘 해낼 수가 없다. 많은 보수가 주어지지 않는데도 사명감을 가지고 묵묵히 일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고생하는 여러분을 위해 조금이라도 처우를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성철 한국일보 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4년 만에 재개한 첫 행사를 서울시 사회복지단체 관계자들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수도 한복판에 남산처럼 아름다운 공간이 있다는 건 정말 축복이다. 거북이마라톤을 남산의 콘텐츠, 시민의 콘텐츠, 건강의 콘텐츠로 키워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김현훈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장 역시 이어진 인사말을 통해 “오늘 행사를 개최할 수 있어 기쁘다”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란다”고 했다.
오 시장이 울린 징 소리에 맞춰 출발한 참가자들은 알록달록 물든 가을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람에 단풍잎이 흩날리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참가자들의 손도 바빴다. 종로구민회관 수영동호회 친구 사이인 정성숙씨와 박명균씨도 “오랜만에 경치를 즐기며 걸으니 행복하다”면서 가을을 만끽했다. 두 사람은 거북이마라톤에 20년 넘게 참가한 베테랑이다. 두 친구 손에 이끌려 첫 참가한 오은희씨도 “앞으로 매년 와야겠다”고 흡족해했다. 은희씨와 함께 걸은 반려견 재롱이는 올해 유일한 강아지 참가자로, 이날 가장 주목받은 인기스타였다.
용산구 아동양육시설 혜심원 아이들도 가을 소풍을 겸해 대회에 참가했다. 주최 측이 나눠준 노란색 모자를 똑같이 쓴 아이들은 즉석에서 “단무지 걸스”라는 이름도 붙였다. 아이들은 “다리가 튼튼하니까 완주할 수 있다” “내가 1등을 하겠다”며 씩씩하게 걸었다.
도착점에선 각종 게임과 행운권 추첨 등 다양한 이벤트 행사가 마련돼 즐거움을 더했다. 가수 쏘킴이 열창한 공연도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시각장애인 인솔 봉사자로 참가한 안인수씨는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작은 힘을 보태 드리고, 나 또한 운동이 되니 너무나 좋다”며 “내년에는 은퇴한 친구들을 불러 모아 자원봉사자로 참여시켜서 다 같이 거북이마라톤에 나오겠다”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