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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적?' 희고 곱던 밀가루가 거칠게 변하는 이유

입력
2023.10.27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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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밀가루의 역사

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격주 금요일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여러 브랜드의 밀가루가 대형마트에 진열돼 있다. 뉴시스

여러 브랜드의 밀가루가 대형마트에 진열돼 있다. 뉴시스

밀가루는 좀 억울하다. 설탕과 더불어 건강에 가장 나쁜 식재료라는 오명에 시달리고 있다. 곱고 흰 가루다 보니 설탕과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원래 밀가루는 그렇게 하얗지도 곱지도 않았다. 쌀이 도정의 정도에 따라 현미와 백미로 갈리듯 밀가루도 제분에 따라 얼마든지 희지 않은 가루로 거듭날 수 있다. 실제로 인류는 희지도 곱지도 않은 밀가루를 희고 고운 가루보다 훨씬 더 오래 먹어 왔다.

영양의 측면에서도 우리는 밀가루를 폄하하고 있다. ‘정제 탄수화물’의 대표로 꼽히지만 희지 않다면 영양소도 풍부하다. 그렇다, 원래 밀가루는 희지도 않고 영양소도 풍부한 식재료였다. 하지만 채 200년도 안 되는 세월 동안 정체성이 180도 바뀌었다. 먹으면 체중이나 증가하는 탄수화물의 선두 주자로 꼽히고 있는 현실이다. 어쩌다가 밀가루는 이런 처지에 이르렀을까. 역사 속에 답이 있다.

체로 내려지는 밀가루. 게티이미지뱅크

체로 내려지는 밀가루. 게티이미지뱅크


기원전 3,000년 전 배젖 분리했지만

밀가루를 먹으려면 밀이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밀은 인류가 채 기억하기도 어려운, 까마득히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해 왔다. 채집과 수렵이 일상이었던 시절, 기원전 2만1,000년 쯤에 인류가 야생 밀을 먹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경작 또한 적어도 기원전 8,500년 쯤엔 이루어졌음을 유적이 보장한다.

쌀과 달리 밀은 알곡을 가루 내 반죽해야 먹기 더 편하다. 제분을 거쳐야 좀 더 붙임성 있는 식재료가 된다는 의미다. 근 5,000년 동안 제분의 핵심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밀의 알곡은 크게 겨와 배젖 그리고 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껍질인 겨는 섬유소, 눈은 단백질과 엽산, 비타민 B군 등의 영양소를 담고 있다.

밀에서 가장 비율이 큰 몸통 즉 배젖은 눈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데 대부분이 탄수화물이다. 따라서 밀가루를 먹으면 배젖으로부터 탄수화물을 가장 많이 섭취하게 된다.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의 인류는 겨와 눈을 먹을 여지가 많았다. 기원전 3,000년의 이집트를 예로 들면 절구와 공이로 밀 알곡을 빻아 겨와 배젖을 분리하고 초승달 모양으로 생긴 맷돌로 갈아 가루를 냈다.

이후 맷돌은 우리가 아는 두 개의 둥근 돌판을 맞대어 회전시키는 방식으로 발전했다.이렇게 돌로 알곡을 간다기보다 부숴 제분하는 방식은 거의 5,000년가량 변화가 없었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본격적인 변화가 이뤄진다. 관건은 역시 겨와 눈이었다. 이 둘이 포함된 밀가루는 거칠기도 하지만 효소의 방해로 발효를 시켜도 반죽이 풍성하게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

밀가루의 원료인 밀과 낱알. 게티이미지뱅크

밀가루의 원료인 밀과 낱알. 게티이미지뱅크


천에 내려 겨와 눈 분리한 상류층 식재료

그 결과 거무죽죽하고 거친 빵을 먹어야 했던 인류는 계속해서 겨와 눈을 밀가루에서 배제하려 노력했다. 중세 잉글랜드에서는 체와 천에 밀가루를 내려 겨와 눈을 분리하는 공정을 거쳤는데 인력을 많이 투입해야 하니 흰 밀가루는 상류층의 전유물로 자리 잡았다. 귀족은 희고 부드러운, 평민은 검고 거친 빵을 먹는 체계가 자리 잡힌 것이다.

그러나 겨와 눈을 분리한 밀가루도 오늘날의 그것처럼 하얗지도 곱지도 않았다. 당시의 물리적인 분리에 한계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눈을 함께 제분하면 베타카로틴을 함유한 기름이 나와 밀가루를 누렇게 물들였다. 이처럼 겨 기름이 배인 밀가루는 금방 산패해 장기 보관 및 유통이 어려웠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헝가리에서 최초로 이루어졌다. 크기가 다른 맷돌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제분기가 개발된 것이다.


돌에서 철로... 밀가루 제분 방식의 변화

헝가리에서 최초로 개발되었지만 미국에는 프랑스식이라 알려진 제분기는 공업 제분의 초석을 마련했다. 하지만 태생적인 한계는 떨쳐버리지 못했다. 맷돌 자체가 문제였다. 돌은 오랜 제분 과정을 거치다 보면 결국 깨져버리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기에 대체재가 필요했다. 잠깐 도자기가 등장했지만 곧 철의 시대가 도래했다. 철로 만든 롤러를 탑재한 제분기가 유럽에서 등장했고 곧 미국에 도입되며 밀가루의 전성기가 열렸다.

미국 미네소타주의 폭포.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미네소타주의 폭포. 게티이미지뱅크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산업적 밀가루, 좀 더 넓게 보아 탄수화물의 기반은 1870년대 이후 미국에서 자리 잡았다. 북중부의 미네소타주는 인근의 노스다코타 및 사우스다코타주와 더불어 전통적으로 밀의 주생산지였다. 덕분에 많은 기업이 출범할 수 있었고, 카길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곡물 유통에서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카길은 미네소타 동부에서 1865년 윌리엄 카길에 의해 밀 창고 사업체로 설립되어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들에게 밀 사업은 또 다른 ‘골드 러시’였다.

미네소타주는 엄청난 에너지 잠재력도 갖추고 있었다. 미 대륙을 수직으로 가르는 미시시피강이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세인트앤서니 폭포를 형성하고 있었다. 단차가 나는 물은 결국 위치에너지이니 이런 미니애폴리스의 가능성을 동부 뉴잉글랜드 출신의 사업가 몇몇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밀+에너지=제분’의 등식을 머릿속에 그렸다.


폭포와 밀 산업의 상관관계

그렇게 여러 사업가가 세인트앤서니 폭포 양옆에 제분 사업을 설립한 가운데 한쪽에서 각각 한 명씩의 사업가가 치고 나왔다. 남북전쟁 장성 출신인 캐드월러 C. 워시번(1818~1882)과 A. 필스버리(1842~1889)였다. 둘은 각각 미시시피강의 서쪽과 동쪽에 자리 잡아 제분 사업을 벌이고 사세를 차츰 확장해 나갔다. 강 양쪽에 이전의 업체와는 규모 면에서 비교조차 불가능한 제분소를 지어 경쟁 업체들을 압도했다.

그렇게 두 업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며 제분 업계의 1, 2위로 올라섰다. 이는 제분기의 혁신 때문에 가능했다. 혁신을 중요하게 여겼던 워시번에게는 오른팔인 존 크로스비와 왼팔인 조지 크리스천이 있었다. 특히 제분 기술자인 크리스천은 프랑스의 기술자들을 고용해 제분기의 개선을 꾀했다. 관건은 겨와 눈의 빠르고도 완전한 분리였다.

결국 다중 철제 롤러를 탑재한 차세대 제분기가 개발되어 순수하게 배젖만으로 희고 고운 가루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겨의 기름이 밴 누런 밀가루와는 작별을 고하였다. 워시번과 필스버리는 각각 ‘골드메달’과 ‘필스버리’ 브랜드를 설립해 120년 동안 엎치락뒤치락 경쟁하며 다국적 식품기업인 제너럴밀스와 필스버리로 성장해 나갔다. 오늘날 필스버리는 소유권이 몇 차례 바뀐 끝에 제너럴밀스 산하 브랜드가 되었다.

19세기 말 미국에서 벌어진 제분 혁명으로 밀가루는 완전히 새로운 식재료로 거듭났다. 겨와 눈의 성분을 철저하게 배제한 덕분에 맛과 질감의 비약적인 향상이 이루어진 것은 물론 산패의 걱정에서도 자유로워져 유통기한 또한 현저하게 늘어났다. 이제 더 이상 각 마을의 소규모 제분소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대규모 공장에서 제분된 희고 고운 밀가루를 사서 쓰기만 하면 되는 편한 시절이 도래한 것이다.

미국 유명 밀가루 브랜드 골드메달 제품. 아마존닷컴 캡처

미국 유명 밀가루 브랜드 골드메달 제품. 아마존닷컴 캡처


미국 유명 밀가루 브랜드 필스버리 제품. 필스버리 홈페이지 캡처

미국 유명 밀가루 브랜드 필스버리 제품. 필스버리 홈페이지 캡처


기술로 환골탈태한 밀가루의 그늘

이런 밀가루의 환골탈태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윈윈’인 발전 같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몰라보게 좋아진 맛과 질감의 이면에는 꽤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영양이었다. 겨와 눈을 철저하게 배제해 버림으로써 밀가루는 그 두 요소가 품고 있는 영양소, 특히 엽산과 비타민 B군을 잃고 공허한 칼로리로 전락해 버렸다. 그 탓에 흰 밀가루를 장기 섭취하면 각기병 등에 시달리는 사례가 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20년대 생화학자 벤저민 R. 제이콥스(1879~1963)가 영양강화 밀가루를 개발했다. 제분 과정에서 소실된 영양소를 재첨가한 흰 밀가루로 1940년대 미국에서 의무화되면서 오늘날까지 철분, 니아신, 티아민, 리보플래빈 등이 강화된 밀가루가 미국, 영국, 호주, 칠레 등 7개국에서 유통되고 있다.

오늘날, 밀가루는 상당 부분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통밀가루와 통밀빵을 비롯한 제반 음식을 먹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고, 다시 맷돌로 거칠게 제분하는 소규모 생산 밀가루가 저변을 넓혀 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2021년 1.1%에 그친 밀 자급률을 끌어올리려 시도하고 있지만 그다지 원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거친 통밀로 만든 빵. 더브레드 제공

거친 통밀로 만든 빵. 더브레드 제공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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