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관·빨래방·아이스크림점
소비자 91% "무인매장 이용 경험"
기술 개발로 품목·영역 다양해져
"가격 경쟁력·편리함 맞물려 인기"
# 직장인 A씨는 퇴근 후 실내 테니스장에 도착했다. 매장에 있는 테니스 라켓을 들고 테니스 코트에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테니스 코트에 홀로 선 그는 스크린을 보며 기계가 던져주는 공을 리시브했다. 30분 정도 테니스를 치고 테니스장을 나설 때까지 A씨는 혼자였다. 직원이 없는 무인(無人) 테니스장의 모습이다.
무인매장이 늘고 있다. '인생네컷'으로 대표되는 무인 사진관과 무인 빨래방,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 등은 이미 일상에 자리 잡았다.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무인매장을 한 번이라도 이용해 본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91%에 달했다. 무인매장은 흔히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기 쉽지만 60세 이상에서도 83%가량이 이용 경험이 있을 만큼 보편화됐다.
주목할 것은 무인매장이 탈바꿈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무인매장은 무인카페,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 등 소매점이 대세였지만 최근에는 무인 트렌드는 유지하되 더 많은 영역으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테니스, MZ세대 인기 타고 무인기술 보급 중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무인 테니스장이 이런 흐름을 잘 보여준다. 2023년 10월을 기준으로 서울시의 무인 테니스장은 30여 개에 달한다. 올해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서울시의 테니스장 수가 67개임을 고려하면 서울시 테니스장의 절반 가까이가 무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실내 테니스장 '락테니스'는 예약과 연습 등 전 과정이 모두 무인으로 진행된다. 테니스 코치에게 강습을 받을 순 있지만 강습 시간 외에는 직원이 따로 없다. 테니스장을 이용하고 싶은 고객은 온라인 예약이나 키오스크를 통해 원하는 시간과 코트를 지정한 뒤 운동을 즐기면 된다. 매장에 있는 테니스 라켓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복장만 챙기면 된다.
본디 테니스는 두 명이 하는 스포츠지만 스크린 테니스 설비가 갖춰져 있어 혼자서도 운동이 가능하다. 예약한 시간에 지정한 코트에 들어가 공의 속도, 구질 등을 선택하면 설정값에 맞춰 기계가 공을 던진다. 야외 테니스장과 달리 날씨와 바람에 구애받지 않고 24시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 인기가 좋다.
서울 강남구에서 락테니스 가로수길점을 운영하는 이모(40)씨는 "스크린 야구장 개발사가 (스크린 야구장을) 응용해 제작한 것"이라며 "강습과 스크린 테니스 등 일평균 매장 이용객은 스무 명이 넘는다"고 전했다. 그는 주 이용객이 젊은 세대로 인터넷 환경에 익숙하고 원하는 시간에 운동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친구, 자녀와 함께 매장을 찾은 신준희(33)씨도 "직원이 없어 아이들과 와도 눈치가 보이지 않고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색 '무인'의 등장, 무인 담금주 공방
무인과는 인연이 없어 보이던 영역에서도 매장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실내 공방 체험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양초, 향수, 반지 등 공예품 제작법을 배우고 실물로 제작해 가져갈 수 있어 이색 체험으로 각광받았다. 제작 방법이나 주의 사항 등을 필수적으로 알아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강사의 안내에 맞춰 참여하는 것이 필수였다.
서울 마포구 '무인공방'은 담금주 공방이다. 다른 공방과 달리 무인공방에선 강사가 아닌 매장에 있는 태블릿과 이어폰으로 담금주 제조 방식을 배운다. 이용객은 예약 시에 증류식과 희석식 중 원하는 소주를 선택할 수 있다. 딸기, 오렌지, 파인애플 등 건과일과 히비스커스, 당귀 등 매장에 진열된 담금주 재료를 병에 담고, 선택한 술을 담아 입구를 봉하면 완성된다.
기본적으로는 무인으로 진행되지만 어려움이 생기면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태블릿으로 강의를 듣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나, 재료 배합 비율 등은 요청 시 직원이 자세하게 안내한다. 개점 이래 8,000명 넘게 찾아왔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도 1,000회 이상 언급되는 등 꾸준히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기념일을 맞아 애인과 무인공방을 찾았다는 김모(22)씨는 "평소 관련 글을 보고 무인공방에 호기심이 생기던 차에 특별한 경험을 위해 방문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팀이 함께 진행되지만 태블릿으로 영상을 일정 부분 다시 보거나 멈춰 놓을 수도 있는 등 효율적이고 편안하다고 느꼈다"고 방문 경험을 설명했다.
"기술 저항감 낮아 거부감 적어"
새로운 형태의 무인매장은 더 많이 보급될 수 있을까.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응답자의 상당수가 일부 업종은 무인매장으로 완전한 대체가 가능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무인매장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이용 편의성이 좋다며 전반적으로 우호적 태도를 보였다.
상명대 소비자분석연구소 이준영 소장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며 소비자도 무인 기술을 더 편하게 받아들이게 됐다고 진단했다. 이 소장은 이 과정에서 "가격 경쟁력을 추구하는 공급자와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입장이 서로 맞물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인상점의 편의성, 가격 경쟁력 등이 공급자와 소비자의 선택에 유의미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국내 소비자는 전자결제 이용이나 신기술에 저항감이 적고 시장 상황 적응력도 빠른 편"이라며 "이런 환경이 갖춰져 있기에 점포의 무인화에 빨리 대응할 수 있었고 유통 채널(점주)의 입장에서도 고정 비용의 감소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술 개발 과정에서 무인매장의 영역이나 품목의 다양성이 확장될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