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뒷다리 잡지 마라

입력
2023.10.19 18:00
26면
0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삼성 임원진들에게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삼성 임원진들에게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소비자한테 돈 받고 팔면서 불량품을 내놓는 게 미안하지도 않냐.”

1993년 6월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원 200여 명에게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그는 “취임 후 6년간 계속해서 ‘불량 안 된다’고 떠들었는데도 아직도 질보다 양을 고집한다”며 호통쳤다. 이어 “지금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가 될 것”이라며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다 한번 바꿔 보자고, 다 뒤엎어보자”고 주문했다. 신경영 선언이다. 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이라는 현수막을 걸고 15만 대의 애니콜 화형식을 연 것도 이런 충격 요법의 일환이었다.

□ 그러나 조직을 변화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변화를 거부하는 움직임도 감지됐다. 이 회장은 93년 7월 오사카 회의에서 “바뀌고 싶은 사람만 바뀌어라, 기다리겠다, 개인마다 다른 것 인정한다, 그러나 남의 뒷다리는 잡지 마라”고 경고했다. 그의 ‘뒷다리론’은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도 먹여 살린다는 ‘인재론’과도 연결된다. 이 회장은 “달릴 사람은 달리고 쉬었다 갈 사람은 쉬어라, 안 자르고 월급도 주겠다, 대신 다른 사람의 뒷다리는 잡지 마라”고 거듭 역설했다.

□ 그렇다고 천재만 중시한 건 아니다. 이 회장은 일류가 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인류를 위해서, 한국을 위해서, 삼성 임직원 가족과 자손을 위해서 영원히 잘살자고 하는 것”이라며 ‘다 같이 더불어 잘사는 지혜’를 강조했다.

□ 사실 우리 사회 일각엔 남이 잘되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토가 없잖다. 삼류 제도가 일류 혁신의 발목을 잡는 일도 허다하다. 변화를 시도하는 곳엔 시기와 질투, 음해와 험담이 난무한다. 똑똑한 머리를 남의 뒷다리를 잡거나 방해하는 데 쓰는 이들도 적잖다. 이런 일이 잦아지면 아무리 뛰어난 인재도 창의성과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 결과는 ‘다 함께 못 사는 길’이다. 한국에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같은 이가 성장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 30년 전 위기와 변화를 외친 선구자의 혜안을 돌아보게 된다.

박일근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