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몸' 같은 휠체어, 편도 4번씩 갈아타야
필수 의료 보조기기도 '사전 신청' 필요해
"정부 '교통약자 이동편의 조사' 안 와닿아"
노금호(41)씨는 항공편으로 2시간이면 가는 일본 후쿠오카를 9시간이나 걸리는 배를 타고 가기로 했다. 느린 여행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근육장애가 있어 휠체어로 이동해야 하는 그에게 항공기는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행 경험은 고난 그 자체였다. 기내에 전동휠체어 반입이 안 돼 타고 내릴 때 두 번씩 휠체어를 갈아탔다. 브리지(공항 게이트와 비행기 입구를 연결하는 통로)가 없을 땐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찾거나 누군가의 등에 업혀 탑승 계단을 올라야 했다. 노씨는 19일 "여행지도 배편이 가능한 곳을 찾다 보니 몇 개밖에 고를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거리두기' 해제 후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신체장애인에겐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기내 구조, 항공사 관련 규정 등 안락한 여행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한둘이 아니다.
"좌석 맞게 보조기 고쳐 가도 탑승 거절"
휠체어 문제는 바뀌지 않는 대표 걸림돌이다. 신체장애인에게 전동휠체어는 몸의 일부나 다름없는 데도, 대다수가 배터리 규정 탓에 기내 이용이 불가능하다. 배터리를 분리한 휠체어를 화물칸에 맡기고 수동 휠체어를 탄 뒤 탑승 시 기내용 휠체어로 한 번 더 갈아타야 한다. 움직임을 돕는 보조장치가 없어 갈아탈 땐 항공사 직원 등에 업히는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항공기로 제주도 출장을 다녀온 지체장애인 박명애(68)씨는 "동행인 없이 혼자 여행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까다로운 절차도 항공기 이용을 주저하게 한다. 많은 항공사가 기내 휠체어나 기타 보조기를 사용하려면 미리 신청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기내가 협소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은 있지만, 이런 규정을 모르는 장애인이 많아 막상 상황이 닥치면 낙담하기 일쑤다.
올해 3월엔 아시아나 항공기 안에서 척추 보조기구를 쓰려던 중증 지체장애인 A씨가 탑승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항공사 측은 사전에 기내 사용 신청을 안 한 데다, 보조기구의 '안전 인증'도 받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보조기구는 착석을 위해 그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품이었다. 일행은 결국 비행편을 놓쳐 다음 날 다른 항공사를 이용했고, A씨 측은 5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A씨 어머니는 통화에서 "기내 좌석에 맞도록 보조기구 폭을 2㎝ 줄여가기까지 했지만, 항공사는 납득이 가지 않는 대처를 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승객 안전 등을 위해 휠체어 배터리 종류 및 탈부착 여부, 의료 보조기구의 인증표식 여부를 사전 고지받고 있다"고 해명했다.
다른 나라는 교통약자들의 장거리 이동권을 적극 보장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 델타항공 자회사인 델타항공프로덕트는 6월 '기내 휠체어 전용 좌석' 디자인을 선보였다. 굳이 휠체어에서 내려 좌석으로 옮겨 앉을 필요 없이, 휠체어째 바닥에 고정하는 방식이다.
'교통약자 이동 개선' 정부 조사도 현실과 괴리
장애인들의 불편이 개선되지 않는 데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정부 실태조사도 한몫한다. 국토교통부는 관련법에 근거해 교통약자들의 이동편의시설 현황을 조사한다. 2021년 항공기의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 기준 '적합 설치율'은 73.7%에 달했고, 전년도에도 70%를 넘었다.
꽤 높은 '적합률'로 보이지만, 설정 기준에 문제가 있었다. 조사에서 기준으로 삼는 항공기 이동편의시설은 △음성·영상안내 시설 △내부 휠체어 비치 여부 △휠체어 사용자 전용 좌석 △항공기 통로 △휠체어 보관함 등 정도다. 얼마나 다양한 휠체어를 구비했는지, 화장실은 충분히 넓은지, 통로 너비가 휠체어 이용에 문제가 없는지 등 교통약자들이 느끼는 필수 고려 사항은 빠졌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는 "기내에서 생리현상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태반인데, 피부에 와닿지 않는 결과"라며 좀 더 면밀한 조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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