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불갑천 재해복구사업
8월 원활한 차량 통행 위해
선산 훼손…유골 3구 사라져
'무연고지' 이장 말에 강행
유가족 "조상 볼 면목 없어"
현장 소장 "잘못했다" 인정
"묘와 유골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습니다. 세상천지 이런 일이 있나요. 조상님 볼 면목이 없습니다."
지난달 21일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준비 중이던 A씨는 현장에 나간 인부들로부터 귀를 의심케 하는 얘기를 들었다. A씨의 증조부와 고조모·부의 묘가 있어야 할 선산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소식이었다. 지난 4월 제사를 지낼 당시만 해도 멀쩡했던 선산이다. 처음에는 그저 인부들이 잘못 알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서둘러 현장에 달려 나간 A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100여 년 간 공들여 관리해 온 조상들의 분묘가 흔적도 없이 송두리째 파헤쳐 사라진 모습이었다.
실제로 17일 오후 전남 영광군 군서면 매산리. 불갑천 재해복구사업이 한창인 현장 인근에선 붉은 속살을 드러낸 공터가 눈에 띄었다. 공사 차량이 여러 차례 지나다닌 듯 바퀴 자국이 선명했고, 돌무더기와 무너진 흙더미가 널려 있었다. 이 공터는 불과 2달여 전까지 묘지가 있던 선산이다.
전남도가 영광군 군서면 일원에 총 사업비 282억 8,900만 원을 들여 '영광 불갑천 재해복구사업'을 추진 중이다. 교량 재가설, 제방 축조, 호안 정비, 기타 시설물 정비 등 호우 피해 예방이 목적이다. 그런데 지난 8월 2일 전남도청으로부터 용역을 수주해 사업을 추진하는 B 건설업체가 범람 우려가 있는 제방을 보강하기 위해 약 500㎡에 달하는 A씨의 선산을 포클레인으로 밀어버렸다. 공사 차량 통행이 원활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무연고지라는 마을 이장의 얘기만 듣고 공사를 추진 한 것.
A씨는 "토지대장도 확인하지 않은 채 마을 주민들의 얘기만 듣고 남의 사유지에 무단으로 공사를 진행한 것도 어처구니 없지만 관으로 추정되는 나무가 포클레인에 걸렸는데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해 3구의 유골이 완전히 사라진 실정"이라며 "조상들의 유골이 뒤섞인 토사까지 제멋대로 가져가 공사에 사용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지난달 22일 현장소장과 업체 대표를 분묘 개장, 유골 유기, 절도, 산지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에 대해 현장소장 C씨는 "공사를 진행했을 당시에는 풀이 많이 자라 미쳐 봉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나무가 많이 자라 있었기 때문에 당시 포클레인에 걸린 것이 뿌리인지 관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토지대장을 확인하지 않은 채 공사를 추진한 부분에 대해선 전적으로 잘못을 인정한다"며 "유골이 섞인 토사는 다시 선산이 있던 공터에 쌓아두었다"고 덧붙였다.
전남도와 시공사는 협의를 통해 원상복구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A씨는 "유골이 없는 데 도대체 어떤 식으로 원상복구를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개하고 있다. 전남도 관계자는 "장례업체 관계자 등 전문가를 통해 흙에서 유골을 발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지 강구하고 있다"며 "민사를 포함한 손해배상은 물론 영혼제나 평장 형식의 묘지 조성 등 유가족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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