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최초 주민 인정하는 개헌안
호주서 반대 60%로 찬성 앞질러
호주에서 원주민을 ‘최초의 호주인’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대변할 헌법 기구를 세우는 등 권리를 개선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이 부결됐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14일(현지시간) 개헌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의 개표 도중 개헌안 부결을 인정했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앨버니지 총리는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번 투표 결과를 “전적으로 존중한다”면서 “개헌에 대한 의견 불일치가 호주인을 정의 내리거나, 분열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모두 호주인이다. 호주인으로서 애초에 왜 그런 논쟁을 벌였는지는 잊지 않고, 이를 넘어 우리나라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BBC방송은 전국적으로 약 70%의 개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반대’가 60%로 찬성(40%)을 크게 앞질렀다고 전했다. ABC 등 호주 현지 매체들은 6개주(州) 모두에서 유권자 과반이 반대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주에서는 전국적으로 투표자 과반이 찬성하고, 또 6개주 중 4개주에서 과반 찬성이 나와야 개헌안이 가결된다.
‘토착 동물’ 원주민, 234년 만 개헌 시도
6만 년 이상 호주 대륙에 살아온 원주민은 전체 인구(2,600만 명)의 약 3.2%다. 이날 치러진 선거에서는 호주 원주민과 토러스 해협 도서민들을 최초의 국민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대변할 헌법 기구 보이스를 설립하는 내용의 개헌에 찬성하는지를 물었다. 호주 헌법 제정 당시 원주민의 존재는 부정 당했다. 주인 없는 땅에 국가를 세웠단 명분을 위해서였다.
가디언은 이날 국민투표가 영국의 호주 정착으로부터 234년, 호주 원주민에 대한 투표권 부여로부터는 61년 만에 이뤄졌다고 전했다. 또 원주민 가정에서 아이들을 강제로 빼앗는 등 수십 년간의 차별적인 정부 정책으로 인한 피해에 호주 총리가 사과한 지 15년 만의 일이었다.
실제 개헌 절차를 밟기 이전까지 호주에서 이에 대한 지지율은 80%(지난해 5월 기준)에 달하는 등 이견이 크게 없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투표가 시작되자 호주 사회는 찬반으로 극명하게 갈렸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졌다.
“사회 분열 가져오는 역차별”
원주민 지위 향상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앨버니지 총리를 비롯한 개헌 지지자들은 개헌을 통해 헌법에서 원주민을 인정하고, 이들의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야당인 자유당과 국민당 연합은 헌법에 특정 인종을 명기하는 것은 호주인을 인종에 따라 차별해 ‘사회 분열’을 가져온다고 반대했다. 보이스라는 조직 역시 권한이나 기능이 명확하지 않아 위험하다고 지적하면서 “잘 모르겠다면 ‘반대’를 찍어라”라는 캠페인을 펼쳤다.
호주 내 많은 이민자 사회에서도 원주민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는 역차별이라면서 반대했다. 또 강성 원주민 권익단체도 “개헌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며 긍정적이지 않았다.
영국 가디언은 “원주민 권리 지지자들은 이번 선거 패배를 호주에서 화해와 인정을 진전시키려 싸워온 투쟁에 대한 타격으로 볼 것”이라면서 “원주민들은 계속해서 차별, 열악한 건강 및 경제적 상황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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