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옥션 24일 경매 시작가 35억 원
개념미술·미디어 아트와 나란히 전시
백화점 한가운데 기마석상 옆 그림도
단순·자연미 현대인 미감 자극, 재해석
미술시장에서 달 항아리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달 항아리는 약 60억 원, 지난 9월 19일 뉴욕 소더비 경매에 나온 달 항아리는 약 47억 원에 낙찰자의 손에 넘어갔다. 서울옥션도 24일 경매에 조선시대인 18세기 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달 항아리를 경매 시작가 35억 원에 내놓을 예정이다.
국내 최대 경매사인 서울옥션 경매에 달 항아리가 출품된 것은 지난 2019년 31억 원 낙찰 기록 이후 처음이다. 조선시대 17, 18세기 제작된 높이 40㎝ 이상의 백자대호(白磁大壺)는 국내외에 20여 점만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출품되는 달 항아리는 높이 47.5cm, 직경 42.3cm로 이에 해당하며, 찌그러짐이 덜한 원형으로 안정감이 느껴진다. 옅은 붉은 기가 곳곳에 눈에 띄지만 얼룩은 달 항아리의 역사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해서 가치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유약이 다른 달 항아리에 비해 얇게 발라진 듯한 약점은 있다.
달 항아리 이색 전시가 잇따르고 있다. 전시 형태가 독특하거나 작품 자체가 수작이다. 관람객은 야외에서 '불멍(불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 '물멍(물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하듯이 달 항아리를 감상하고 있다. 요즘 미술관에서는 '달멍'이 대세로 떠오른다고 할 만하다.
개념미술 작품 배경으로 달 항아리 보며 멍 때리기
형태나 소재보다 아이디어 전개를 중시하는 현대미술 장르인 개념미술(Conceptual Art) 작품들 한가운데 달 항아리를 배치한 전시가 눈길을 끈다.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지난 8월 31일부터 열리고 있는 로렌스 위너(1942~2021) 회고전 'LAWRENCE WEINER: UNDER THE SUN'이 그것. 알파벳으로 이뤄진 '언어 조각'(Language Sculpture)을 배경으로 항아리가 자리 잡고 있다.
희귀작인 조선 후기 달 항아리의 세련된 미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18세기 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박제된 유물 느낌이 아니다. 현대미술과도 통하는 달 항아리 특유의 단순미, 자연주의, 개방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보물’로 지정된 이 달 항아리는 미학적 가치도 크다. 높이 44.5㎝, 직경 43.5cm로 정비례에 가깝다. 달 항아리는 보통 아래위 사발 두 개를 만들어 접합하기 때문에 비정형성이 매력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 항아리는 원형에 가까운 셈이다. 얼룩도 작은 '미인형'이다. 2000년 서경배 회장이 직접 결정해 사들인 이 달 항아리는 현재 전시된 공간인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 설계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8일까지.
백화점 대리석 계단 위 달 항아리 넋 놓고 바라보기
백화점에서 쇼핑객이 대리석 계단 위, 현대미술 기마석상 옆 120호 크기의 달 항아리 그림과 갑자기 마주하며 넋을 놓게 하는 전시도 있다. 1억3,000만 원짜리다.
신세계갤러리는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최영욱 작가의 개인전 ‘최영욱: 인. 연(因. 緣)’을 열고 백화점 내 벽면 곳곳에 최 작가의 달 항아리 회화 연작 ‘카르마(KARMA)’ 31점을 전시 중이다.
최 작가는 캔버스 위에 젯소와 백색가루를 혼합한 안료를 칠한 뒤 사포로 갈아내고 칠하기를 반복해 백자의 두께감을 나타내는 세밀한 표현을 하는 것으로 이름이 나있다. 2011년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건물 준공과 함께 그의 달 항아리 그림 3점을 구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회화는 상상력을 발휘해 달 항아리를 더욱 미화하는 매력이 있다. 최 작가의 달 항아리도 찌그러짐을 표현했지만 정비례에 가깝다. 백자 표면 균열도 산수화의 산맥같이 표현해 삶의 수많은 인연을 나타낸다. 작품 제목도 산스크리트어로 ‘업’(業)이라는 뜻의 불교용어인 ‘카르마’(Karma)다. 전시는 다음 달 29일까지.
미디어아트 배경 달빛 창가 달멍하는 기분
달빛 창가에서 달 항아리를 감상하며 상념에 잠길 수 있는 상설 전시도 있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3층 백자실 미디어 아트를 배경으로 독립공간에 전시된 달 항아리 앞 의자에는 20대로 보이는 외국인 여성 2명이 앉아 넋을 놓고 달 항아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2021년 ‘분청사기·백자실’을 새 단장하면서 독립공간에서 상설전시 중인 이 달 항아리 배경에는 달 그림이 그려진 조선 서화로 만든 미디어 아트가 깔렸다. 미디어 아트로 원작에는 없던 달 항아리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달을 연상케 하는 조명을 받은 백자대호의 빛과 그림자가 운치를 더한다. 조선시대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달 항아리는 높이 41㎝, 직경 40㎝로 아모레퍼시픽 소장본과 같이 정비례성이 강하다.
MZ도 열광하는 달 항아리, 왜?
달 항아리가 MZ세대에게도 각광을 받는 추세는 백자대호 미감의 재발견·재해석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고미술품이지만 ‘단순한 것이 더 아름답다(Less is more)’로 축약되는 현대미술의 미니멀리즘에 부합하는 특성이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강정연구센터 대표(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는 “달 항아리는 인간이 반을 만들지만 불가마에 들어가 구워지는 대로 찌그러짐과 색상의 차이가 나타나 자연이 반을 만드는 자연주의에 순응하는 특성이 있다”며 “단순할수록 아름답다는 현대의 디자인 철학과도 통하는 것으로 달 항아리의 미감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라고 풀이했다.
근대에 가까운 시기에 제작된 고미술품이란 점이 현대미술작과 잘 어울리는 이유란 해석도 있다. 현문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학예팀장은 “소장품 가운데 고려청자보다 시간적 연속성이 있는 달 항아리 등 근세기에 가까운 고미술품을 현대미술작과 함께 전시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시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달 항아리의 문예 기술사적 가치도 재조명되고 있다. 임진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백자대호는 청자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구워지기 때문에 조선 후기 높은 기술 단계에서 만들어졌다”며 “일본에 앞서 단단한 백자를 만들게 된 것을 보여주는 조선 하이테크의 상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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