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내연녀에 PC 포맷·차명폰 개통 지시
"부탁 안 들어주면 생활비 끊겠다" 협박도
BNK경남은행에서 발생한 3,000억 원 규모 횡령 사건의 공범이 범행 발각 뒤 베트남으로 도주하려다 검찰의 출국금지 조치에 가로막힌 것으로 확인됐다. 내연녀에게 "생활비를 주지 않겠다"며 증거인멸과 도주를 도우라고 압박한 사실도 드러났다.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공소장에 따르면, 횡령 사건 주범인 전직 경남은행 금융투자부장 이모(51)씨는 올해 7월 수사망이 좁혀오자 도주를 결심한 후 공범이자 그의 고교동창인 증권사 직원 황모(52)씨를 만나 도주 계획을 공유했다. 이씨는 "사건이 터졌다, 자금을 모두 빼겠다"며 "나는 도망갈 것이고, 연락이 안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황씨가 "나 내일 베트남 간다"고 맞장구치자, 이씨는 "그럼 너도 거기 가서 살고 돌아오지 말라"며 "내 컴퓨터를 포맷해달라"고 부탁했다.
황씨는 자기까지 덜미를 잡힐 것을 우려해, 내연녀인 20대 A씨를 끌어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황씨는 A씨에게 "내 동업자 친구가 잘못한 것이 있는데, 나도 큰 사건에 휘말렸다"며 "내가 살고있는 오피스텔을 옮기거나 정 안되면 해외로 나가야 할 수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씨에게 횡령 범행에 사용된 컴퓨터 포맷을 지시했다. 또 A씨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월 평균 250만 원을 A씨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제공해 온 점을 빌미로 "들어주지 않으면 생활비를 주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그렇게 차명 휴대폰을 받아들고 인천국제공항까지 갔으나, 황씨는 결국 베트남행에 실패했다. 당일 검찰이 황씨를 출국금지 조치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2009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시행사 17곳을 사칭해 위조 전표를 만들며 경남은행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자금을 횡령한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감독원은 이들의 횡령액을 2,988억 원으로 최종 산정했다. 13년 간 이어온 횡령은 예금보호공사가 지난해 9월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하고 검찰에 수사의뢰하며 덜미를 잡혔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는 지난달 이씨와 황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사문서위조및동행사 등 혐의로 잇달아 구속기소했다. A씨는 증거인멸 및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세 사람의 첫 재판은 이달 2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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